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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외로움까지 국가가 개입해야 하나?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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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외로움까지 국가가 개입해야 하나?

속보
충남 홍성 김 공장에 큰 불...대응 1단계
영국·일본에 이어
‘외로움 전담 차관’ 등
정책 공약으로 추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耐性 약화될까 염려돼
학계·시민사회 논쟁부터
지난 6·3 대선에서는 정책 대결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갑자기 치른 보궐선거라 해도 후보자들이 국가 정책을 둘러싸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정치의 생산적인 장면은 너무나 아쉬웠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민주당의 ‘외로움’ 관련 정책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집에는 정부 내에 외로움 정책을 전담하는 차관을 지정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실 이는 민주당 쪽에서 처음 개발한 정책 상품이 아니다. 2024년 10월 오세훈 서울 시정(市政)은 이른바 ‘외로움 없는 서울’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 목적은 시민의 고립과 외로움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연결망 회복인데, 1인 가구 급증, 고립감 확산, 고독사 및 자살률 증대, 주민 정신 건강 악화 및 유관 범죄 증가 등이 그 배경이다. 이에 따라 동 주민센터 중심의 지역 돌봄망 구축, 골목 공동체에 기반한 이웃사촌 활성화, 식사 함께하기를 뜻하는 ‘소셜 다이닝’ 프로그램 등이 진행 중이다. 24시간 콜센터 ‘외로움 안녕 120’도 개통했고 ‘서울형 외로움 지수’ 또한 곧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구분이 없어 보이는 외로움 관련 정부 대응은 우리나라가 원조는 아니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고독부(Minister for Loneliness)’를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내각부 산하에 ‘고립·고독 대책 담당실’을 설치했다. 이쯤 되면 외로움의 국가적 의제화(議題化)를 세계적 추세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정책 효과가 영국과 일본에서도 불확실한 가운데, 이례적 촉발 계기에 따른 두 나라의 특이한 정책 실험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국가나 계급 대신 ‘조화로운 공동체’ 담론을 중시하는 영국은 외로움을 단순한 감정 이상의 사회적 불안 요소로 여기는 전통이 있다. 특히 브렉시트 국민투표 시국에 피살당한 조 콕스 하원 의원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분위기가 고독부 탄생의 결정적 정황이 되었다. 템스강에서 보트 생활을 하면서까지 사회적 약자의 친구로 살았던 그녀는 평소 외로움을 ‘숨은 전염병’이라 불렀다. 일본의 외로움 관련 담당 조직 역시 코로나 사태 때 벌어진 자살과 고독사 폭증 사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 빼고는 보란 듯 내세울 만한 움직임이 별로 없는데,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외로움이란 어디까지나 사적 차원의 주관적 감정이라는 입장으로, 미국이 대표적이다. 외로운 정도를 객관적으로 정량화하기 힘든 만큼 정책 대상이 되기에는 원천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또한 외로움을 국가가 진단하고 처방하는 순간 외로운 감정은 결함이나 질병으로 낙인찍히기 쉽다고 우려한다. 곧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정책 메시지는 정상과 비정상 혹은 삶의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외로움을 판단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외로움 현상에 대한 대증(對症) 요법보다 그것을 유발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중시한다. 그런 만큼 고용 안정, 주거난 해결, 교육 기회 증대, 의료 서비스 강화, 과잉 경쟁 사회 극복, 사회 양극화 완화와 같은 종전 복지국가 레퍼토리 강화가 외로움 예방의 근본적 방안이라 믿는다.

외로움이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부각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외로움을 국가 정책 목표로 정조준하는 일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릇 정책을 만들면 수혜 인구는 실제보다 느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정책 유인’ 효과인데, 외로운 사람 비율을 높게 잡는 통계가 늘어나거나 한국인 특유의 외로움 인자(因子)를 거론하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이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이는 외로움에 대한 개인적 내성(耐性)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시인 정호승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썼고 배우 오드리 햅번은 ‘나는 외톨이가 되고 싶진 않지만 나를 혼자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 선택과 자기 결정, 자기 책임의 가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외로움 관련 정책에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부풀리고 으스대는 측면이 없지 않다. 개인의 감정이나 마음, 대인 관계의 양과 질까지 국가의 계산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영역에 귀속될까 봐 염려스럽다는 말이다. 그렇잖아도 오늘날은 국가가 전지전능한 눈을 확보한 스마트 통치 시대 아닌가? 설상가상 작금 한국 정치는 포퓰리즘이 대세다. 외로운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옆길로 새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진지한 논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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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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