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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나토 불참 결정은 옳았다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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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나토 불참 결정은 옳았다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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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2025년 나토 정상회담에 이재명 대통령이 불참한 결정을 두고 안팎에서 크게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 중심의 야당 의원들은 이 결정이 ‘외교적 참사’이자 ‘북한 눈치 보기 외교’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나경원 의원은 아예 “동맹의 신뢰를 훼손하고 외교, 안보 입지를 약화시킨 결정”이자 “전략적 연대 포기”라는 악평까지 쏟아냈다. 일부 보수 언론도 ‘나토 정상회의 불참, 국익 손상 우려’ 등의 비판적 논조를 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시드니 사일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고문은 이번 결정이 “유럽과의 방위 협력을 확대하려는 의지가 약화”된 것이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일부 보수 인사들은 자유 민주 진영에서 이탈하여 비동맹국처럼 행동하려는 징조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나토가 중국 견제 수위를 높이려는 시점에서, 진보 성향의 국내 세력이 이 대통령의 방문을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황당한 분석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나토 정상회의는 북대서양 방위를 위한 32개 회원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주요 현안을 다루는 자리다. 한국은 나토와 동맹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2022년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인도·태평양 4개국(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정상이 초청된 것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긴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된 조치였다. 이 4개 나라는 나토 의제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옵서버에 불과하다. 그런 곁가지 모임에 우리 정상이 매년 의무적으로 참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새 정부의 국내 사정, 이란 사태, 그리고 이번 헤이그 정상회의의 전반적 성격으로 보아 위성락 안보실장 파견으로도 무난해 보인다.



둘째, 명분 면에서도 이재명 대통령 참석을 정당화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토는 기본적으로 러시아를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 북한, 이란을 그 동조 세력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자유 민주 진영의 연대라는 명분 아래 나토는 한국과 같은 인태 지역 국가들과의 다각적 협력을 강화하여 러시아, 중국 등에 대한 포위 전선을 구축하고자 해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가치외교의 기치 아래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동조해, 2022년 이후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외교적 실익은 없었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가능성 등 중국 리스크를 안고 돌아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 가치외교와 나토와의 과도한 군사 협력은 동북아시아 신냉전을 자극하고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동북아에서 신냉전 대두를 지극히 우려하는 민주당 정책 노선으로 보아 이번 불참 결정은 다분히 예측 가능했다.



셋째, 이재명 정부는 국익에 기초한 실용외교를 표방한다.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리가 있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는 득보다 실이 더 커 보인다. 일부에서는 동맹 강화, 일단 유사시 나토의 대한국 지원, 방산 협력, 원자력, 그리고 정상외교 기회 등 여러 이점을 나열하고 있지만, 이는 원론적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사실 윤 전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성적표를 보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별로 없다. 더구나 이번 정상회의 주요 의제는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증액 문제다. 결국, 스페인을 제외한 나토 회원국은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아마 이 대통령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러한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이란에 대한 규탄 등 다른 의제에 있어서도 나토와 보조를 맞추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이재명 실용외교와 엇박자가 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만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회동이 확실했다면, 명분이나 실리와 관계없이 이 대통령은 참석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단 하루만 회의에 참석하고 네덜란드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의 조우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헤이그를 찾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을 경우, 거센 국내 정치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은 옳았다. 상식과 순리에 따른 지극히 합리적 선택이었다. 외교적 관례는 물론 주변의 강력한 참석 종용을 물리치고 불참 결정을 내린 그의 외교적 용단이 돋보인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도자도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에 동참하지 않았는가. 이는 미국에 주는 함의도 클 것이라고 본다. 모처럼 제대로 하는 외교 대통령을 뽑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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