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27년전 정자 기부했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 자녀 50명 생긴 60대 남성

조선일보 박선민 기자
원문보기

27년전 정자 기부했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 자녀 50명 생긴 60대 남성

속보
베네수 국회, 항해·무역의 자유 보장법 통과… 미국의 나포 ·봉쇄 등 불법화
27년전 정자를 기증했다가 매주 '새 자녀'의 연락는 받고 있는 네덜란드 남성 니코 카위트(63). /선데이타임스

27년전 정자를 기증했다가 매주 '새 자녀'의 연락는 받고 있는 네덜란드 남성 니코 카위트(63). /선데이타임스


난임 부부를 도우려고 정자를 기증했다가 의료기관의 규칙 위반으로 생물학적 자녀를 50명이나 두게 된 남성의 사연이 전해졌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는 28일 정자를 기증했다가 매주 ‘새 자녀’의 연락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남성 니코 카위트(63)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온 카위트는 30대 후반이었던 1998∼2000년 네덜란드 난임 병원인 킨더벤스 메디컬 센터에 정자를 50여 회 기증했다. 난임 부부가 증가하던 시기였기에 다른 가족을 돕는다는 취지로 기증했고, 일부 정자는 과학 연구와 배아 기증에도 쓰였다.

그런데 2004년 네덜란드에 불법 정자 기증 스캔들이 터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 측에 진상을 요구한 결과 자신이 생물학적 자녀를 총 50명이나 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에 25명, 해외에 25명이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이복형제와 자매 사이의 근친상간과 유전병 유전 및 발병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단일 기증자를 통해 태어날 수 있는 아이의 수를 25명으로 제한해 뒀는데, 병원 측이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정자를 국내외로 무분별하게 판매한 것이다.

카위트는 현재 매주 새로운 자녀의 연락을 받고 있다. 기증 당시 약정에 따라 카위트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는 15세가 되면 카위트에게 연락을 할 수 있다. 아예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단톡방까지 만들었다. 카위트는 “가장 최근 연락은 지난주였는데 19세 이탈리아인이었다”며 “이탈리아어를 잘 못해서 구글 번역을 사용하는데, 그는 영어 실력이 좋지 않아서 이탈리아어로 답장을 보낸다. 그에게는 조금 ‘바벨탑’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카위트는 병원 측이 기존 약정을 어기고 자신의 정자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점에 분노했다. 카위트는 “굉장히 사적인 것을 도둑맞았다”며 “이건 생명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생명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2004년 당시엔 단일 기증자 출생 아이 수를 제한한 조항이 권고 사항이었을 뿐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 측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덜란드가 단일 정자로 태어날 수 있는 아이 수 제한을 법으로 강제하기 시작한 건 불과 지난 4월부터다. 당시 단일 정자 출생 가능 아이 수 기준을 12명으로 정했다.

정부 조사 결과, 병원 측의 무분별한 정자 판매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녀를 두게 된 남성은 카위트뿐만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총 85명의 정자 기증자가 카위트처럼 수십 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이들 중 한 명은 100명 이상의 자녀를 뒀다고 한다. 현재 네덜란드 보건청은 킨더벤스 메디컬 센터 정자 기증 절차와 동의 여부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문제의 병원은 2019년 글로벌 난임 병원인 TFP 퍼틸리티 클리닉스에 인수됐다. 이에 TFP 퍼틸리티 클리닉스는 “우리는 과거 소유자의 문제 행위를 인식하고 있으며, 관련된 가족 및 기증자들과 소통하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인구가 1800만명에 불과한 네덜란드에서는 기증 정자의 오용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복형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성적 관계를 맺은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동을 지원하는 ‘스틴팅 돈오르킨드’ 재단의 티스 반 데르 메어 의장은 “생물학적 아버지가 같으면 비슷한 재능, 관심사, 학업 성향을 지닐 수 있고 같은 지역 스포츠 클럽, 체스 동아리, 전공에서 만나게 될 수 있다. 생각보다 만날 가능성이 크다”며 “아침에 같은 침대에서 일어난 사람이 내 이복형제라는 걸 알게 되는 건 끔찍할 것”이라고 했다.

[박선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