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준 신작…근절되지 않는 아동 학대 문제 다룬 장편
'너에게 묻는다' 표지 이미지 |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TV 시사고발 프로그램 '진실의 탐구'는 아동학대 사건을 조명하는 방송으로 연달아 화제가 된다.
딸에게 표백제를 먹이는 아버지, 어린 형제끼리 실명될 때까지 서로 얼굴을 때리게 하는 어머니,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하는 아버지.
'인면수심'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르게 하는 이들이지만, 대중의 관심은 짧고 가해자가 가석방으로 풀려나 피해자인 자녀 곁에 돌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 유희진은 감옥에서 풀려나 피해자 곁으로 돌아간 아동 학대 가해자들의 근황을 취재하던 중 다수의 가해자가 연달아 실종된 사실을 포착한다.
유희진은 과거 아동 학대 방지 단체의 활동가 김민수가 분에 못 이겨 아동 학대 가해자이자 최근 실종된 사람 중 한 명인 안인수 목사를 폭행했던 사건을 떠올리고, 같은 단체 활동가인 장선기를 찾아가 민수의 행방을 묻는다.
그런데 장선기는 유희진에게 만약 누군가 가해자를 사적으로 단죄한다면 그게 잘못이냐고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죄에 비해 처벌이 약했어요. 형량도 가볍고요. 때론 불기소니 불구속이니 하며 죗값을 치르지조차 않았어요. 그랬을 때 누군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아니면 피해자가 직접 그 부분을 채워 넣는 것. 그게 잘못인가요?"
정용준의 신작 장편소설 '너에게 묻는다'(안온북스)는 아동 학대 문제가 근절되지 않고 가해자들이 지나치게 낮은 처벌만 받고 풀려나는 현실을 조명하면서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아동 학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헌신해온 장선기는 가해자들을 증오하는 마음을 키우며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학대범들을 누군가 사적으로라도 단죄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에 이른다. 유희진은 이런 장선기의 생각에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이런 소설 속 인물들의 고민은 독자들에게 죄 없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학대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아동 학대뿐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또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준다.
여러 아동 학대 사건을 취재한 유희진은 "가장 잔인한 사람은 나를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나를 속까지 알고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며 "잘 알고 이해하는 만큼 무엇에 약하고 절박한지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작가는 대부분의 아동 학대범들이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거나 '훈육일 뿐이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을 꼬집었다. 안인수 목사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자기 마음대로 만들 권한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토기장이, 자식을 토기에 빗대며 학대를 정당화한다.
정용준은 '작가의 말'에 "모든 전쟁은 정의의 이름으로, 모든 폭력은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이 이상하다"며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는 그만 듣고 싶다"고 썼다.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정용준은 장편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을 발표했다.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받았다.
348쪽.
jae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