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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53] 옹졸한 복수 심리

조선일보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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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53] 옹졸한 복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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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일러스트=김성규


깊은 원망과 원한의 감정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원수(怨讎)다. 그런 원수에게 되갚음을 하면 복수(復讎)다. 두 단어에 공동으로 등장하는 수(讎)라는 글자가 다소 의문이다. 새[隹] 두 마리가 시끄럽게 떠들다[言]의 구성이기 때문이다. 새가 지저귀는 것과 원수, 복수는 무슨 상관일까. 이를 제대로 풀어주는 해설은 없다. 그저 이 글자가 나중에는 틀린 글을 고치는 교정(校正)과 관련을 맺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선 떠오르는 관련 단어는 교수(校讎)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글을 바로잡는 일이다. 열악한 출판 조건 아래 글자 바로잡는 행위는 매우 혹독했던 듯하다. 그래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거의 원수 대하듯이 공방(攻防)을 벌였다고 한다. 그로써 ‘교수’라는 조어가 나왔지 싶다.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나온 이 글자는 달리 원수의 새김으로 일찍 자리를 잡았다. 쓰기 복잡한 이 글자를 현대 중국에서는 구(仇)로 줄여서 쓴다. 여느 문화권처럼 중국에서도 이 원수를 향한 증오심은 매우 높다. 하늘 아래 함께 살지 못할 원수를 일컫는 표현이 불공대천(不共戴天)이다. 굳센 살의(殺意)를 담았다. ‘물과 불이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다(水火不容)’ ‘이를 갈고 심장이 썩다(切齒腐心)’ ‘너 죽고 나 살자(你死我活)’ 등의 표현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 원수 심리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집단이다. 지주, 지식인, 자산가 등을 원수로 삼아 숙청함으로써 안정적 집권을 꾀했다. 그러나 공산당의 가장 오랜 원수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西歐) 세력이다. 19세기 서구 열강에 받은 피해를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조장(助長)해 지금껏 활용한다. 문명의 교류보다는 옹졸한 복수를 택한 중국의 처지가 국제적으로 퍽 궁색하다. 게다가 미국은 아직 ‘지는 해’가 아니다. 최근의 이란 사태를 보며 중국의 속내는 더 착잡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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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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