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침대·벽면 수납으로 공간 2~3배 확장
-팬데믹 때 깨달은 공간의 한계, 로보틱스로 해결
"집이 감옥이 되어버렸어요."
2020년 팬데믹 초기,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꼈던 답답함이었다.
안락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특히 서울의 4평 원룸에 사는 2030세대에게 사방이 막힌 집에 머무르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침대를 치우면 책상을, 이를 옮기면 활동 공간을 힘겹게 확보하는 비좁은 현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공간은 협소해지는 악순환이다.
-팬데믹 때 깨달은 공간의 한계, 로보틱스로 해결
"집이 감옥이 되어버렸어요."
2020년 팬데믹 초기,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꼈던 답답함이었다.
안락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특히 서울의 4평 원룸에 사는 2030세대에게 사방이 막힌 집에 머무르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침대를 치우면 책상을, 이를 옮기면 활동 공간을 힘겹게 확보하는 비좁은 현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공간은 협소해지는 악순환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겠다며 나선 스타트업이 있다. '로보톰(Rovothome)'이다. 이들이 개발한 '로보테리어(Roboterior)' 기술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침대와 벽에서 나오는 옷장으로 4평 공간을 12평처럼 쓸 수 있게 한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이미 건설사, 시행사 및 개인고객으로부터 170억원 규모의 구매의향서를 확보했고, 정부로부터도 약 45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공간이 사람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바뀌어야죠"
문래동에 위치한 로보톰 사무실에서 만난 강희진 대표는 간결하게 본인의 철학을 밝혔다. 공동창업자인 윤세용 대표와 함께 연세대 건축학과 학생회장단을 지내며 인연을 쌓은 그는, 공간 컨설팅과 건축사사무소 및 실리콘밸리 프롭테크 스타트업 등을 거쳤다. 건축, 기술, 비즈니스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쌓아왔으며, 70여 개 도시를 직접 돌며 '공간'에 대해 고민해온 건축 전문가다.
"2020년 팬데믹이 터졌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이 집에 '갇혀버렸다'는 표현을 썼어요. 깨달았죠. 집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을 제한하고 있다는 걸요."
문제는 단순히 면적만이 아니었다. 협소한 환경과 고정된 공간 구조, 한 공간에서 여러 기능이 중첩되면서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강희진 대표의 분석이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면적을 더 소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렇다면 공간을 쓰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로보테리어의 핵심은 '물리적 공간 변형'이다. 기존 스마트홈이 조명이나 가전의 IoT 원격제어에 그쳤다면, 로보톰의 기술은 공간 자체를 능동적으로 확장한다. 로보톰 브랜드 Stagehands(스테이지핸즈)의 대표 제품인 'Ceily(씰리)'는 천장에 올린 침대가 필요할 때만 내려와 침실을 만들고, 평소에는 거실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Wally(월리)'는 벽면 가구가 움직여 평소엔 수납공간으로, 필요시엔 책상이나 식탁으로 변신한다.
"기술적으로 중요하고 까다로웠던 건 '소음'이었어요."
로봇가구가 주거공간에서 사용되려면 무엇보다 조용해야 했다. 강희진 대표는 "100kg이 넘는 물체가 하루에 몇 번씩 움직이는데, 이게 시끄럽다면 누가 쓰겠느냐"며 웃었다.
로보톰이 자체 개발한 구동부는 소음을 41dB(도서관 수준)까지 낮췄다. 여기에 3중 안전장치도 적용했다. 비접촉식 센서로 사용자를 미리 감지해 충돌을 예방하고, 실시간 토크 감지로 예기치 않은 충격 시 즉시 정지한다. 또 자동 각도 보정 알고리즘으로 경로 이탈을 방지한다.
"두 손가락으로 살짝 미는 정도의 힘만 감지돼도 바로 멈춰요. 사용자가 로봇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집의 일부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시장 반응은 뜨겁다. 로보톰은 건설사와 시행사 등으로부터 170억원 규모의 구매의향서를 확보했다. 당초 4평 내외 소형 주거공간을 타겟으로 했지만, 최근엔 강남의 중소형 아파트에서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20억 넘는 강남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50대 남성고객께서 연락 주셨어요. 집은 크지만 정작 본인 공간은 침대로 가득한 방 하나뿐이라면서요. 또 다른 분은 자녀가 집에서 공부하려 하면 자꾸 침대에 눕는다며 공간 분리를 위해 저희 제품을 원하셨죠."
강희진 대표는 "중요한 건 공간의 확장을 넘어선 개인화"라며 "Study Ceily(학생용), Collector's Wally(수집가용)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제품군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혁신적이다. 로보톰은 제품 판매와 함께 구독형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월 10~20만원으로 로봇가구를 렌탈하고, 여기에 결합하는 소형 가구들을 교체 구독하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딥테크 기술이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가격도 프리미엄 소비자만을 위한 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5년부터 양산 체계 도입으로 가격을 안정화시킬 계획입니다."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한다. 로보톰은 싱가포르, 일본, 북미를 주요 타겟으로 삼는다. 이들 지역은 모두 주거비 부담과 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한 곳들이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원룸 임대료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일본은 도쿄 중심으로 1인 가구 증가율이 세계 1위다.
조직 운영에서도 강희진 대표만의 철학이 돋보인다.
현재 15명의 팀원과 함께하는 그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 구절을 조직 운영 철학으로 삼는다고 했다.
"첫 번째 팀원이 퇴사할 때 윤세용 대표가 해준 말이에요. 스타트업 대표는 본질적으로 높은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주 실패하고 실망하죠. 하지만 그 순간 마음을 닫고, 팀원을 시스템의 일부로만 보기 시작하면 스타트업의 강력한 힘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윤세용 대표와의 팀워크도 인상적이다. 연세대 건축학과에서 만나 10년 넘게 함께해온 이들은 '0에서 1을 만드는 윤세용, 1에서 100을 만드는 강희진'으로 역할을 나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윤세용 대표가 전략 기획과 기술개발을 맡고, 강희진 대표가 전략 실행과 사업 운영 전반을 담당한다.
"저희는 각자대표이사 체제로, 다른 한 사람의 동의 없이도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요. 이건 서로의 결정을 100% 신뢰한다는 단단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향후 계획도 야심차다. 로보톰은 현재 Pre-A 라운드를 진행 중이며, 전체 투자금의 60% 이상을 확보한 상태다. SEED 라운드에서는 매쉬업벤처스와 코맥스벤처러스,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등이 투자했다. 이들과는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건설사 연결, 기술 제휴 등 다양한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AI 기술 접목도 진행 중이다. Depth-Only 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되,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하는 딥러닝 인간행동 추론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협업해 멀티모달 데이터 기반 AI 알고리즘을 연구 중이다.
Ceily(씰리) 수직이동형 침대
"철근 콘크리트가 고층빌딩의 구현을 가능하게 했듯, 로보틱스는 주거의 다음 혁신이 될 겁니다."
강희진 대표는 로보톰의 궁극적 비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동굴-움집-목조/석조-철근콘크리트로 이어진 주거 혁신의 다음 단계가 바로 로보틱스 주거라는 것이다.
"중학생 때 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축가였어요. 건축가가 아닌 창업가가 되었지만, 지향점은 같아요.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주고 싶습니다."
현재 국내외 1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 중인 로보톰. 4평 원룸에 갇혔던 이들에게 12평의 자유를 선사하겠다는 이들의 도전이 얼마나 현실화 될지 주목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집이 더 이상 사람을 가두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스스로 변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지형 스타트업 기자단 1기 기자 jack@rsqu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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