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장 업주 재판 중 공개
지인 통해 청탁한 피고인 꾸짖어
“전관·판사 지인 변호사 찾아…
이런 일 반복되니까 사법 불신”
지인 통해 청탁한 피고인 꾸짖어
“전관·판사 지인 변호사 찾아…
이런 일 반복되니까 사법 불신”
광주지법 전경. |
지난 11일 오전 광주지법 402호 법정. 선고를 앞두고 판사가 피고인 김모씨에게 “내게 ‘잘 봐달라’고 재판 청탁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김씨는 당황하며 “그런 사실이 없다”며 잡아뗐다. 판사가 꾸짖으며 추궁하자 고개를 숙이며 “친한 형님이 판사님 지인에게 연락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씨는 이날 징역 1년 6개월에 약 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 청탁을 법정에서 공개한 장찬수(56·사법연수원 32기)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25일 본지에 “법정에서 말하지 않았으면 김씨는 ‘청탁이 통해서 낮은 형량을 받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법 불신이 생긴다”며 “‘재판은 공정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 부장판사가 청탁 전화를 받은 건 이 사건 결심 공판 후인 지난달 말이었다. 장 부장판사는 “오랜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김씨를 선처해달라’고 했다”며 “청탁금지법이 생긴 후 이런 로비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곤혹스럽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돈봉투 같은 걸 들고 왔다면 내게 뺨을 맞았을 거다. 당시엔 상대방이 곤란할까 봐 별말 없이 넘겼다”고 했다.
피고인 김씨가 법정에서 “아는 형님에게 사정을 하소연했는데, 그 형님이 판사님 지인과 연이 있어 알아서 부탁해준 것 같다”고 변명한 데 대해선 “누가 요구하지도 않는데 재판 청탁을 하느냐. 삼척동자도 알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어 장 부장판사는 “판결문은 이미 써뒀기 때문에 김씨의 형량 등은 달라질 게 없었다”고 했다.
장 부장판사는 “여전히 청탁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고, 로비의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의뢰인을 속이는 법조 브로커도 많다”며 “전관이나 판사의 동기·동문 변호사를 찾는 것도 ‘선고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인식 때문이다. 사법 불신이 사회 전반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조 비리 단속도 중요하지만, 판사들 스스로가 ‘신독(愼獨·홀로 있을 때 더욱 조심함)’하는 자세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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