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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트루스소셜’이 누설한 일급비밀

조선일보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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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트루스소셜’이 누설한 일급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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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은 우리가 그들의 핵 시설을 파괴한 데 대해 매우 약한 대응을 했다. 이란은 이제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나는 이스라엘 또한 그렇게 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지난 23일 오후 3시 52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이다. 세계가 미국과 이란의 일촉즉발 전면전을 우려하던 순간 백악관 발표도, 국방부 브리핑도 아닌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개인 계정에서 “휴전이 가까워졌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리고 2시간 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올린 또 다른 글에서 이란과의 “완전하고도 총체적인 휴전이 6시간 내 발효된다”고 선언했다.

바야흐로 일급비밀도 소셜미디어에 ‘포스팅(posting·게시)’하는 시대다. 지난 21일 밤 미국의 전격적인 이란 핵 시설 공습 이후 트럼프는 게임을 생중계하듯 자신의 계정에 공습 사실을 올리고, 휴전 합의를 발표하고, 상대국의 반응을 평가했다. 전통 외교의 상징인 백악관 기자회견장이나 국무부 담화문은 사라졌고, 300자 남짓한 소셜미디어 게시글이 핵심 외교 수단이 되고 있다.

트럼프식 소셜미디어 외교는 속도와 직관을 앞세운다. 이란 핵 시설 공습은 불과 이틀 만에 결정됐고 작전 종료 직후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사실상 처음 외부에 노출됐다. “이란이 공격 전에 미리 알려준 데 감사한다”는 트럼프의 게시글은 조롱처럼 들리면서도 이란에 협상 여지를 남기는 외교적 신호였다. 이 모든 전략적 메시지의 창구는 트루스소셜이었다. 트럼프는 전쟁과 외교조차 자신이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여러 콘텐츠 중 하나처럼 가볍게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 방식이 통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란 핵 시설을 타격한 뒤 이란이 ‘상징적 보복’을 하는 데 그치자 스스로 휴전을 선언했고 현재까지는 상황이 안정세로 보인다. 전쟁에서 승리한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 그리고 “미국 병력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전쟁 관리 능력도 동시에 입증했다. 트럼프 지지층은 환호했고,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바이든이 4년간 못 한 일을 트럼프가 12일 만에 끝냈다”는 호평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트럼프식 외교의 약점은 예측 및 통제의 불가능성에 있다. 국방부·국무부 등의 전문 관료들이 배제된 채 대통령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계산에 따라 군사·외교 전략이 즉흥적으로 바뀐다면 그 리스크는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주변 정세에 민감한 나라에는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게시글 하나가 위험천만한 외교·안보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어쩌면 다음 전쟁은 미사일 버튼을 누가 먼저 누르냐가 아니라 선전포고 글을 누가 먼저 소셜미디어에 올리느냐로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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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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