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100년 만 환수]
1924년 일본인에 의해 도쿄로 반출돼
2019년 사토 다카오 고토구인 주지가
한국에 환수 요청하면서 환수 급물살
사토 주지 "당연한 일" 운송 비용 부담
조선시대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観月堂)'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해외 소재 한국 문화유산 건물 전체가 국내로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등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관월당 소장자 일본 가마쿠라(鎌倉)시의 사찰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과 약정을 체결하고 관월당을 해체해 기와와 석재, 목재 등 부재를 양도받아 지난해 국내로 들여왔다. 현재 경기 파주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으로 지어진 맞배지붕의 단층 목조 건축물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관월당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대군급 왕실 사당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국내로 반환된 관월당 부재는 석재 8건(401점), 기와 3,457점, 목재 74건(1,124점) 등이다.
1924년 일본인에 의해 도쿄로 반출돼
2019년 사토 다카오 고토구인 주지가
한국에 환수 요청하면서 환수 급물살
사토 주지 "당연한 일" 운송 비용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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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하기 전 일본 가마쿠라시 사찰 고토쿠인 내부에 있던 관월당. 국가유산청 제공 |
조선시대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観月堂)'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해외 소재 한국 문화유산 건물 전체가 국내로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등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관월당 소장자 일본 가마쿠라(鎌倉)시의 사찰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과 약정을 체결하고 관월당을 해체해 기와와 석재, 목재 등 부재를 양도받아 지난해 국내로 들여왔다. 현재 경기 파주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일제강점기 때 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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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마쿠라시의 사찰 고토쿠인에 있던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3D 스캔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으로 지어진 맞배지붕의 단층 목조 건축물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관월당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대군급 왕실 사당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국내로 반환된 관월당 부재는 석재 8건(401점), 기와 3,457점, 목재 74건(1,124점) 등이다.
건축물에는 파련대공(최상부 구조재인 종도리를 받치는 대공에 덩굴나무가 연속되는 문양 조각), 안초공(공포 부재의 일종으로 평방, 주두, 도리를 감싸 일체화한 부재), 초엽(규모가 큰 건물의 지붕 측면에 설치한 까치발 장식), 초각(지붕 하부에 설치한 부재에 새긴 당초문 조각 장식) 등 궁궐 및 궁가 건축에서 나타나는 의장 요소가 있고 용문, 거미문, 귀면문, 박쥐문 등 기와 암막새가 사용됐다. 특히 왕실과 관련된 대표적 건축 요소인 용문 기와는 건물의 높은 위계를 보여준다.
단청의 문양과 안료 성분을 분석한 결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 채색이 이뤄졌으며 단청에서 구름 모양 운보문(雲寶紋), '卍'자와 같은 만자문(卍字文) 등 다양한 무늬가 확인돼 왕가 단청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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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마쿠라시 고토쿠인에 있던 관월당을 해체하는 과정. 국가유산청 제공 |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관월당은 기본적인 목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내부에는 화려하고 격식 있는 의장을 담은 18, 19세기 왕실 관련 사당 건축물로 추정할 수 있다"며 "해체 당시 상량문 등 당시 건축 자료가 없어 건물의 원래 명칭, 조선에서의 위치 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20년 초반까지 서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월당은 당시 조선 왕실이 조선척식은행에 돈을 빌리며 담보로 잡혔다가 일본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1924년 은행이 야마이치증권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1870~1939)에게 증여하면서 고국을 떠나게 됐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스기노가 한국을 떠나면서 일본 도쿄 메구로 자택으로 옮겼고, 가마쿠라시의 사찰 고토쿠인에 기증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건물은 100년간 사찰에 머물렀으며 최근까지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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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관월당의 부재. 국가유산청 제공 |
환수 추진 日 사찰 주지 "문화재 반환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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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다카오 일본 고토쿠인 주지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100년 만에 일본에서 귀환' 언론공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관월당 귀환 추진은 불교계에서 시작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은 2010년 총무원장이던 자승 스님 주도로 관월당 환수 논의를 추진했다. 당시 한일 불교계는 31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에서 관월당 환수를 위한 협약 체결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내 보수 우익 단체의 반발로 환수 논의가 흐지부지 됐다.
꺼졌던 불씨가 살아난 것은 2019년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가 한국 측에 귀환을 요청하면서다. 사토 주지의 환수 요청에 국가유산청은 공동 학술 조사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심포지엄 등이 연기되면서 환수 일정도 차질이 빚어졌다. 하지만 2022년 환수 논의가 다시 추진됐고, 본격적인 환수 절차에 돌입했다. 수차례 공동 연구를 진행한 끝에 지난해 국내 전문가들이 현지에서 수개월 동안 해체 작업을 벌인 끝에 기와와 석재 등 부재를 순차적으로 국내로 옮겼다.
사토 주지는 이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월당 반환은 문화재 반환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따른 당연한 일"이라며 "최적의 보존을 위해서는 관월당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해 기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토 주지는 해체 및 운송 비용을 자비로 부담했다. 이에 대해 사토 주지는 "한국 측에서 해체 운송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했지만, 100년 정도 일본에 있던 애착이 가는 건물을 자비로 무사히 한국에 보내주고 싶었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관월당 환수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간 문화재 환수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해로, 양국의 관계 발전을 위해 그간 부진했던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 환수 논의를 진척시킬 수 있는 적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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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왼쪽 세 번째) 국가유산청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맨 왼쪽),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맨 오른쪽)과 관월당 부재를 한국으로 정식 양도하는 기증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관월당 귀환은 소장자의 진정성 있는 기증과 한일 양국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던 모범적인 사례"라며 "관월당이 한일 문화적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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