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콘서트
/안테나 |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조윤석·50)이 그리는 삶의 궤적은 늘 통념을 깼다. 1997년 밴드 ‘미선이’로 데뷔 후 자주 받은 질문은 ‘왜 안정된 길을 버렸냐’. 서울대 공대를 거쳐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음악에 전념했다. 이후 솔로 1집 ‘Lucid Fall’이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꼽혔지만, 2016년 돌연 제주도로 터전을 옮겨 농부가 됐다. 이듬해 홈쇼핑에서 귤을 팔았다.
루시드폴은 이번에도 엉뚱한 공연을 골랐다. 7월 4~6일 사흘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객석도, 무대도, 기승전결도 없는 ‘3無 공연’의 음악 감독을 맡은 것. 세종문화회관의 연속 기획 공연 ‘싱크넥스트’의 일환으로 정가(正歌) 뮤지션 정마리, 설치미술가 부지현과 함께 무대에 선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그는 “세부 각본이 없다. 공연 시작과 끝을 조명으로 알리고, 총 길이 3시간인 점만 정해 두었다”고 했다. 관객들은 입장부터 덧신과 베개를 제공받고, 객석과 무대 구분이 없는 공연장에서 눕거나, 털썩 주저앉아 관람한다. 그 사이 루시드폴은 앰비언트(Ambient) 음악을, 정마리는 정가를, 부지현은 철제 구조물과 레이저를 활용한 설치 전시를 공연장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선보인다. 루시드폴은 “통상의 콘서트는 오프닝에서 환호하고, 앙코르 곡으로 모든 걸 쏟아붓고, 귀가하며 이완된 감정을 느낀다. 그 암묵적인 틀을 깨보고 싶었다”고 했다.
루시드폴이 맡은 앰비언트 음악은 현장에서 채집한 소리나 이를 닮은 전자 사운드로 공간감을 조성하는 장르다. 주로 명상 음악으로 애용된다. 루시드폴은 2019년부터 꾸준히 이 장르를 선보였고, 2023년 앰비언트 정규 음반 ‘Being- with’에선 건축 현장의 삐걱대는 소리를 채집해 썼다. 이번 공연에도 “부지현 작가가 쇠막대기를 깎거나 연기를 흩뿌리는 소리가 스며들 것”이라고 했다. 앰비언트 음악 재생은 직접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의 마그네틱 필름들을 이어 붙여 반복 재생하는 ‘테이프 루프’(Tape Loop) 기법을 쓸 계획. 루시드폴은 “마치 생물을 닮은 테이프만의 독특한 소리 물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테이프 필름은 흠집을 입을수록 꼭 노화 과정처럼 소리가 점차 낡아가고, 앞뒤로 되감으며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다”고 했다.
루시드폴은 11월 3년 만의 싱어송라이터 정규 음반도 선보인다. “2005년 냈던 포르투갈어 노래 ‘물이 되는 꿈’을 새로 싣는다”고 했다. 5년 전 이수지 작가가 이 노래 가사를 주제로 쓴 그림책 ‘여름이 온다’가 7월 브라질 현지에 수출되는데, “그에 맞춰 제대로 된 포르투갈어 발음을 재녹음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뷰 막바지에는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저마다의 ‘좋았다’를 외쳤으면 한다”고 했다. 앰비언트의 매력은 공간의 냄새를 소리로 느끼게 해준다는 것. “푹푹 찌는 7월의 광화문에서 시원한 공연장으로 들어설 때, 그 서늘한 향이 기분 좋게 남았으면 합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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