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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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노동조합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정의한다(제2조 제5호). 파업은 오직 이 노동쟁의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노동쟁의가 아닌 사안으로 파업하면 불법이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여기서 ‘결정’이라는 단어 하나를 뺀다. 그리하여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가 된다. 사소해 보인다. 단어 하나 빼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그러나 법률에서 단어 하나는 세계를 바꾼다.
이를 이해하려면 노동쟁의의 두 가지 유형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이익분쟁이다. “임금을 올려달라”, “근로시간을 줄여달라”처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근로조건을 새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이다. 다른 하나는 권리분쟁이다. “약속한 임금을 지급하라”, “부당해고를 철회하라”처럼 이미 결정된 권리의 이행을 요구하는 분쟁이다.
핵심은 ‘결정’이다. ‘결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앞서 본 ‘이익분쟁’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근로조건을 새로 결정하는 과정이다. 반면 ‘권리분쟁’은 이미 결정된 것의 이행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근로조건의 결정’이라는 표현은 ‘이익분쟁’만을 가리킨다. 현행법상 ‘권리분쟁’은 노동쟁의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결정’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모두가 노동쟁의가 된다. 임금체불에 반대하는 것도 노동쟁의가 된다. 부당해고에 반대하는 것도 노동쟁의가 된다. 파업의 빗장이 풀린다.
노동계는 환호한다. 현행 권리구제 절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권리분쟁을 해결하려면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판단을 받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법률전문가 선임 비용도 만만치 않다. 파업과 같은 실력행사로 신속하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경영계의 시각은 다르다. 모든 분쟁이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문제다. 부당해고나 임금체불에는 이미 별도의 구제 절차가 있다. 느리고 번거롭더라도 법적 해결 경로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모든 분쟁을 파업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억울한 해고 하나가 파업의 도화선이 되어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다. 불필요한 노사 갈등만 증폭시킨다는 우려가 여기에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개정이 낳을지 모를 예상 밖의 파급효과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게 책정한다거나 근로시간을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하자. 이런 정부 정책들은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다. 사용자가 결정할 사항도 아니다. 그러나 임금과 근로시간은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관한’ 핵심 사항 아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법 해석의 틈이 생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도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이유로 파업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정치파업의 문이 열린다.
물론 ‘결정’이 사라진다고 정치파업이 곧바로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파업의 대상을 ‘사용자가 처분 가능한 사항’으로 엄격히 제한하여 왔다. 따라서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처럼 사용자가 바꿀 수 없는 사안에 대한 파업은 법원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핵심은 판결의 결과가 아니다. 법정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 문제다. 승패와 무관하게 그 과정은 이미 값비싼 소모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업 발전과 노동 존중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하였다. 노란봉투법 개정은 바로 이 양립의 약속과 규칙의 원칙이 충돌하는 시험대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규칙의 변경이 투자와 고용이라는 발전의 토대를 위태롭게 한다. ‘결정’이라는 단어 하나, 그 작은 변화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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