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2030 여성 시대
지난 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KIA 경기를 관람하는 여성 팬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KIA 김도영을 응원하는 팬은 구단이 애니메이션 캐릭터 ‘티니핑’과 협업해 만든 유니폼을 입고 있다. 야구장을 찾는 젊은 여성 팬들은 남성 팬이나 다른 세대의 여성 팬보다 유니폼 같은 용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뉴스1 |
프로야구 삼성을 응원하는 대학생 오채민(24)씨는 대구 야구장에 ‘직관(직접 관람)’을 가는 날이면 유니폼과 응원 도구 등을 판매하는 매장부터 들른다. 작년부터 선수 유니폼만 네 벌을 샀다. 이 외에도 가방이나 응원용 타월, 기념품 등에 약 70만원을 썼다. 그는 “투수 이호성이 올해부터 등번호가 바뀌어 새로 장만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화 팬 이정화(27)씨는 지난 15일 폭우로 중간에 100분 넘게 중단된 한화-LG전 때 끝까지 야구장을 지켰다. 그는 “빗속에서도 노래하고, 선수를 향해 응원 구호를 외치면 마치 아이돌 콘서트장에 있는 기분”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선수 응원가를 ‘떼창’할 때 온몸에 전율이 인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
올해 역대급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 흥행의 주역은 단연 20·30대 젊은 여성 팬이다. 국내 야구장을 찾는 관중 10명 중 4명이 2030대 여성이다. 유니폼이나 액세서리 등 응원 관련 용품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팬도 이들이다. 복잡한 야구 규칙을 제대로 몰라 ‘야알못(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 취급받던 이들이 지금은 팀과 선수에 대한 진한 애착과 적극적인 소비로 프로야구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아이돌 응원하듯 야구장에 ‘커피 차’ 보내
22일 프로야구 6개 구단(KIA·LG·삼성·한화·KT·SSG) 티켓 예매 사이트인 티켓링크에 따르면, 성별과 나이 구분 없이 프로야구 티켓을 가장 많이 사는 소비자는 20~30대 여성으로 나타났다. 2023년엔 전체 구매자의 3분의 1 정도(33.7%)였는데, 올해는 38.3%로 더 늘었다. 젊은 여성 야구 팬 점유율이 5%포인트 가까이 증가하는 동안 2030 남성 비율은 25%에서 24.5%로 소폭 줄었다.
그래픽=송윤혜 |
롯데 팬들이 롯데 선수단에 보낸 커피 차./소셜미디어 X |
여성 팬의 적극적인 유입 속에 프로야구는 아이돌 콘서트장 같은 팬덤의 무대처럼 바뀌고 있다. 노래와 춤, 응원 구호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한국 야구장 특유의 흥겨운 응원 분위기가 콘서트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의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돌 콘서트장에서나 보던 ‘대포 카메라’를 들고 오는 여성 팬이 늘고, 특정 선수 팬클럽이 선수단에 ‘커피 차’를 제공하는 모습도 이젠 낯설지 않다”고 했다. 일부 구단은 이런 팬덤을 위해 대포 카메라 전용 좌석 마련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30대 여성, 유니폼 등에 27만원 넘게 지출
소비 여력이 있는 30대 여성 팬들은 야구판의 ‘큰손’이 되고 있다. KBO 조사에 따르면, 30대 여성 팬의 연평균 야구 용품 관련 지출은 27만3000원으로 전체 평균(23만5000원)보다 더 높다. KBO 관계자는 “남성 팬이 모자나 티셔츠를 선호하는 데 반해, 여성 팬들은 가격대가 더 높은 유니폼·점퍼·액세서리 구매에 더 적극적”이라며 “여성 팬의 증가는 모기업 지원에 의존하던 구단들이 재정적으로 자생력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
티켓값과 먹거리를 합쳐도 콘서트·뮤지컬보다 저렴한 야구 관람의 ‘가성비’도 여성 팬을 끌어들이는 매력이다. SSG 팬 문영주(27)씨는 “야구장 내 비싼 테이블석도 뮤지컬이나 콘서트 티켓보다 저렴하다”며 “야구 관람만큼 가성비 탁월한 취미는 없다”고 했다.
젊은 여성 팬들은 선수에 대한 애착만큼 굿즈 구매에도 열성적이다. 가령 KIA 김도영의 팬이 홈·원정별 유니폼에 어린이용 캐릭터 ‘티니핑’ 등과 합작한 한정판 등 여러 버전을 모조리 사는 식이다. 덕분에 구단들의 굿즈 매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롯데는 굿즈로만 40억6000만원, NC는 66억5000만원 매출을 기록했다. 열성 팬이 많은 KIA·한화·LG 등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관계자들은 “여성 팬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작년에 이어 입장 수익도 크게 늘었고 수익도 안정화되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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