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5명으로는 부족해."
올해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한 강민구 밍글스 오너셰프가 파라다이스와 손잡았다. 지난 13일 인천 아트파라디소에서 한 차례, 오는 7월 4일엔 파라다이스 부산에서 갈라디너를 또 한 차례 연다. 한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협업이다. 여행플러스는 강민구 셰프를 만나 요리 너머의 얘기를 들어봤다.
파라다이스와의 인연은 연락 한 통에서 시작됐다. 오너셰프로서 그는 늘 한계 앞에 서야 했다. 규모나 자본이 필요한 일은 혼자선 감당하기 어려웠고 제약이 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첫 만남은 작년 초였다. 그 자리에서 '장충동 호텔 프로젝트'를 처음 들었다. 1년 가까운 논의 끝에 연구개발(R&D) 센터 주방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호텔도 착공에 들어갔다.
밍글스는 하루 최대 55명, 한 달에 1000명 정도의 손님을 받는다. 외식업에서 파인다이닝은 전체 시장의 0.01%도 안되는 작은 규모다. 강 셰프에겐 이 숫자로 부족했다. 왜 파라다이스였을까. 유명 해외 브랜드도, 화려한 글로벌 체인도 아니었다. 국내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버텨온 토종 호스피탤리티 그룹. 그리고 새로 짓는 공간에 처음부터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파인다이닝에서 창의성은 생존이다. 메뉴는 계절마다 바뀌고 손님 반응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런 모든 걸 주방 안에서 동시에 해내는 건 버겁다. R&D 셰프가 팀에 있어도 마찬가지. 운영, 인사, 육아까지 병행하는 오너셰프에게 창작만을 위한 환경은 절실했다. 강 셰프는 "R&D는 진짜 말처럼 쉽지 않다"며 "시간, 사람, 돈, 다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의 R&D센터는 '열린 플랫폼'을 지향했다. 외부 셰프들과 공동 연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호텔 협업 매장은 파인다이닝과 결이 다르지만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같다"고 했다. 제철 재료를 쓰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가격 대비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강 셰프는"밍글스 코스가 40만원이지만 1만2000원짜리 샐러드를 만들어도 같은 철학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캐주얼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구성이 중요하고 설명과 철학이 과하면 피로감만 준다.
강 셰프에겐 반얀트리에서의 6년이 컸다. '페스타 바이 민구'를 그곳에서 운영한 경험이었다. 호텔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로드숍 운영의 유연함. 이 둘이 겹쳐진 결과가 이번 프로젝트였다.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도 짙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후배 양성이 중요하다. 강 셰프가 "밍글스를 연 게 2014년, 어느덧 11년이 지났다"면서 "그사이 한국은 파인다이닝이라는 장르를 단숨에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했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로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다"고 전했다. 그는 "큰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고 둘째는 2학년인데, 큰아이는 이 일을 하고 싶어한다"며 "지금 외식업은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걱정했다. 함께해온 팀원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11년 차, 8년 차, 6년 차, 3년 차가 함께 일한다. 그는 "언젠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10년 전 정부 주도 한식 세계화 정책은 큰 성과 없이 끝났지만 지금은 파인다이닝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흐름이 생겼다. "문화는 계획 잡고 돈을 투입한다고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며 강 셰프는 단호했다. 음식은 문화 전체 안에서 움직인다. 음악, 영화, 영상 콘텐츠에 이어 미술과 예술까지. 문화가 잘 어우러지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고 싶어하는 게 음식이다.
최근 주목하는 곳은 뉴욕의 '주옥'이다. 한국에서 영업을 접고 그대로 뉴욕에 다시 문을 열었다. 현지화가 아니라 한국에서 하던 걸 그대로 가져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 셰프는 설명했다.
한식 핵심 재료 '장'을 주제로 책을 쓴 이유도 밝혔다. 코로나 시기 손님이 오기 어려워지자 밖과 소통할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 한국 셰프가 직접 쓴 한식 책이 거의 없어서 해외 독자를 위해 영문판으로 먼저 냈다. 강 셰프는 (책을) 많이 팔겠다는 욕심은 없다고 했다. 누군가 한식이 궁금해졌을 때 꺼내볼 수 있는 책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세계 파인다이닝 흐름에 대해서는 "지속가능성은 트렌드를 넘어 기본값이 됐다"고 말했다. 아스파라거스 같은 서양 채소를 국내에서 재배해 소개하는 데도 노력한다. "예전엔 수입품뿐이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품질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기른다"며 "서양 채소라도 한국 땅에서 자라고 한식과 만나면 새로운 결과가 나온다"고 언급했다. 이런 재료가 수출되면 외화를 버는 식문화 콘텐츠가 된다.
경기 침체 속 파인다이닝은 어떻게 살아남고 있을까. 강 셰프는 "다 잘되는 건 아니다"며 "파인다이닝은 국가 경제가 성장해야 같이 올라간다"고 현실부터 짚었다. 그는 "지금 한국은 성장이 멈췄고 파인다이닝이 동력을 얻으려면 결국 관광객이 더 와야 한다"며 "한국 셰프들 실력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고 원화 약세로 가격까지 생각하면 더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결국 답은 하나다. 더 많은 외국 손님이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래야 파인다이닝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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