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의 세계
니콜라 트윌리 지음|김희봉 옮김|세종연구원|484쪽|2만4000원
냉장에는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것 이상의 능력이 있다. 차가우면 고기가 더 맛있어지기 때문이다. 온도를 낮추면 미생물 증식을 늦춰 육류의 분해 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고기의 맛과 질감을 변화시키는 생화학 반응을 조율할 수 있기도 하다. 이는 보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수천 년 동안 늦가을에 도축을 해 왔다.
오늘날 선진국 대형 마트에서 소고기와 양고기를 구입한다면 그 고기는 전기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전기 충격을 주면 사후 경직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빠르게 냉각해도 근육 수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 충격을 준 후 냉각한 고기는 과연 ‘신선한’ 것일까? 20세기 초 냉장고의 등장 이후 냉장식품은 신선식품과 동의어로 여겨지지만 ‘뉴요커’에 기고하며 과학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저자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의 식품 시스템 자체가 차가움에 의해 동상에 걸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을 최적화하기 위해 냉장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시절 식품은 고유한 특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환경에서 보관되었다. 감자는 서늘하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치즈는 계단 아래 찬장 선반에…. 그러나 요즘은 이 모든 것이 냉장고 안에 뒤섞여 있다. “냉장고는 편리한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을 보관하는 더 나은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만들어낸 북극’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을 고민하게 한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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