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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청구서 온다… “한국 국방비, GDP 5% 돼야”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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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청구서 온다… “한국 국방비, GDP 5%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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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방부 “亞 동맹국도 기준 적용”
수용 땐 국방비 2배 늘어나 132조
미군 분담금 인상도 요구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클럽 월드컵 대회 참가차 미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 유벤투스 선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클럽 월드컵 대회 참가차 미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 유벤투스 선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 국방부가 19일(현지 시각)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들도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GDP 대비 5% 국방비를 책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아시아 동맹들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올해 한국 정부의 국방 예산은 GDP 대비 2.3% 수준인 61조2469억원이다. GDP 대비 5%(약 132조원) 기준에 맞추려면 국방 예산을 70조원 이상 증액해야 한다.

션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19일 한국 언론 서면 질의에 “피트 헤그세스 국방 장관이 18일(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과 샹그릴라 대화(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보 행사)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유럽 동맹과 아시아 동맹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며 “GDP의 5%를 국방에 지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동맹 역시 ‘5% 국방비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AP 연합뉴스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AP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미국 요구대로 단기간에 국방 예산을 5%로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동맹국을 ‘안보 무임승차’라고 비판해 온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산 무기 구입,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외교부는 “국방비는 국내외 안보 환경과 정부 재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우리가 결정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美 무기 더 사줘야 하나… ‘국방비 5%’ 밀당 시작됐다

국방부는 미국이 한국 등 아시아 동맹도 국방 예산을 GDP 대비 5%로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20일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 등 엄중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여 국방비를 지속 증액해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반도 방위 및 역내 평화·안정에 필요한 능력과 태세를 구비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약 2.3%로 미국의 다른 우방국인 영국(2.3%), 호주(2.0%), 일본(1.8%)과 비슷하거나 높은 편이다.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미국 정부는 아시아 동맹국의 국방 예산 인상 시한을 못 박지는 않았다. 다만 한국에 대해선 내년 1조5192억원인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추가 인상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이라고 부르며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100억달러(약 13조원)로 올리겠다고 했다.

미국 무기 체계를 구입하는 방안도 있지만 방산 업계에서는 우리 군이 필요로 하는 조기 경보 통제기(약 3조원), 해상 작전 헬기(약 2조원) 등을 도입해도 당장 GDP 대비 5% 국방비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앞서 미국에서 국방비 인상 요구를 받은 나토 회원국들도 5% 지출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최근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2027년까지 2.5%로 높이고 2029년부터인 다음 의회 임기에서는 3%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스페인 등 일부 나토 국가는 5% 구상에 반발하고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2032년까지 직접 군사비로 GDP의 3.5%를 지출하고, 나머지 광범위한 안보 관련 분야에 1.5%를 추가 지출해 총 5% 목표를 충족하는 방식을 거론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GDP 대비 국방비 5%’ 요구는 실제 숫자보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는 대외 전략 변화를 상징하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동맹국들도 자국 안보를 위해 더 많은 책임을 맡고 지출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5% 가이드라인은 미국이 ‘자기 방어는 자기가 책임지라’고 각국 지도자에게 보내는 신호”라며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주한 미군이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국방비를 증액해 전력을 강화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마련한 ‘임시 국방 전략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대비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북한을 비롯한 다른 위협 요인에 대한 대응은 동맹국들에 대부분 맡기기로 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미국은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북한의 재래식 위협은 한국이 맡는 등의 변화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방비 증액은 필요하지만 세수가 감소하고 복지 예산은 증가 추세인 상황을 고려할 때 5%를 무조건 맞추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실제 미 측과 논의가 시작되면 여러 이슈를 함께 논의하는 ‘패키지 딜’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여기엔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가 인상,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는 물론 주한 미군의 역할 변화 등이 포함될 수 있는 만큼 국방 예산 증액도 포괄적 논의 과정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 회의에 참석하고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국방비 지출 문제가 양국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 회의 참석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유럽 국가들이 나토 정상 회의에서 5% 지출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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