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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11] ‘하지 않음’의 미덕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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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11] ‘하지 않음’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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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산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해, 산책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실 산책이라 부르기에 친구와 내가 걷는 거리는 행군에 가깝다. 만보는 기본, 2만보 길게는 3만보를 걷는 날도 있다. 3만보면 20㎞가 넘는 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몸에 사달이 났다. 족저근막염. 아침의 첫걸음이 가장 고통스러운 이 병은 그의 일상을 괴롭혔다. 유명하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진찰을 받고, 고가의 체외 충격파 치료를 받았다. 발바닥 근막을 늘려주는 스트레칭도 숙제처럼 했다. 하지만 잠시 통증을 덮어두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까?” 친구는 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몸을 짓누르던 체중, 아파도 습관적으로 걸었던 발.

“내 몸은 너무 무겁고, 내 발은 쉬고 싶다!” 날카로운 통증의 목소리를 듣자, 끝없는 과부하가 그의 몸을 짓눌렀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걸어 다녔던 삶. 하지만 그 자유는 발에게 족쇄가 됐다.

고통은 때로 훌륭한 스승이 된다. 생각해 보니 평소 건강식품과 영양제 등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어온 성실한 삶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일부터! 오늘까지만!”이란 핑계를 대며 ‘나쁜 것’을 멈추는 데는 인색했다. 의사가 말하길,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면 대부분 몸에 좋은 10가지를 하는 것보다, 몸에 정말 나쁜 한두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치료다. 의사는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실천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혹독한 식단 조절이나 무리한 운동 대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체중을 줄이고, 발에게 휴식을 주었다. 걷고 싶을 때 참았고, 오래 서 있고 싶을 때 일부러 앉았다. 발의 고통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때로 진정한 치유는 외부의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닌, 내면을 돌아보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에겐 ‘하지 않음’의 미덕이 중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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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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