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좋은 투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날 투구 내용은 가공할 만했다. 피출루 자체는 적지 않았으나 막강한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KT 타선을 잠재웠다. 이날 올러가 그런 호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두 가지였다. 시속 157㎞까지 나온 강력하고 움직임이 좋은 패스트볼, 그리고 그를 공략하기 위해 투입된 좌타자들을 얼어붙게 한 주무기 슬러브였다.
올러의 슬러브는 시속 140㎞ 남짓에 형성된다. KT는 아무래도 좌타자가 승산이 높다는 판단 하에 팀 내 좌타자들을 많이 넣었다. 그런데 올러의 슬러브가 좌타자 바깥쪽 코스에 기가 막히며 떨어지며 숱한 헛스윙 및 루킹 삼진을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존을 폭격하는 수준이었다. 제구도 잘 됐고, 낙폭도 좋았다. 좌타자 바깥쪽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며 보더라인에 꽂히는 슬러브는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구종 분류에서 슬라이더로 보이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팀 동료이자 리그 최강의 구종으로 뽑히는 제임스 네일의 스위퍼처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올러는 이 질문에 항상 “슬러브”라고 답한다. 실제 네일의 스위퍼와 올러의 슬러브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성향이 있다. 네일의 스위퍼가 조금 더 횡적인 움직임을 갖는다면, 올러의 슬러브는 종적인 움직임이 더 있다. 좌타자 바깥쪽의 문을 따고 들어간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성격 자체는 약간 다른 셈이다.
앞으로도 상대 타자들의 대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이 감독은 “타자들은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감지를 해야 출발을 한다. 볼이라고 생각해 안 나갔는데 스트라이크가 들어온다”면서 “어제 같은 경우는 직구 스피드도 워낙 좋았다. 아무래도 가까운 쪽을 왼손 타자들이 생각해야 하는데 백도어로 슬러브가 제일 어려운 코스에 딱 들어왔다. 타자들이 굉장히 까다로웠을 것”이라고 타자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네일의 스위퍼와 올러의 슬러브 모두 어느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구종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감독은 “각도가 조금 다르다. 올러 것은 약간 사선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네일의 것은 횡으로 나가는 느낌이 있다”면서 “어떤 공이 더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웃어보였다. 타자 성향에 따라 네일의 스위퍼가 더 어려울 수도, 올러의 슬러브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봤다.
사실 네일이 에이스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올러의 올해 성적도 만만치 않다. 시즌이 끝났을 때 외국인 에이스 타이틀 보유자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는 성적 차이다. 네일은 시즌 15경기에서 91이닝을 던지며 5승2패 평균자책점 2.57, 피안타율 0.231, 이닝당출루허용수(WHIP) 1.09, 82탈삼진, 그리고 10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올러는 15경기에서 89이닝을 소화하며 7승3패 평균자책점 3.03, 피안타율 0.224, WHIP 1.06, 102탈삼진, 11번의 퀄리티스타트다.
아직 네일이 근소하게 앞서 있지만 올러도 KBO리그에 적응하면서 오히려 더 강력한 구위를 보여주고 있다. 두 선수가 시즌 막판까지 잘 버틴다면, KIA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원투펀치 조합이 탄생할 수도 있다. 후반기 대반격을 노리는 KIA의 든든한 믿을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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