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발간
서울 1호 아파트 지구 이촌동에 대한 숨은 이야기
서울 1호 아파트 지구 이촌동에 대한 숨은 이야기
1968년 서부이촌동 경관. 강변로 옆 시영아파트는 안쪽의 불량주택지를 가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서울기록원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이 강남과 여의도보다 먼저 형성된 서울 이촌동 아파트 단지의 역사와 생활 문화를 조명한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발간했다.
조사 자료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서울 아파트 1호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먼저 이촌동은 맨션, 타워, 시범, 시영, 시민, 공무원, 외인 아파트 등 각양각색의 아파트가 공존하며 '아파트 백화점'으로 불렸다.
본래 '이촌동'이라는 지명은 잦은 한강 홍수로 인해 주민들이 '옮겨 살았다'(移村)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1925년 대홍수 이후 조선인 거주가 금지된 폐동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대규모 정치 집회 장소나 스포츠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나,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어 환경 훼손이 심각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한강변 매립 공사를 통해 이촌동은 새로운 주거지로 변모했다. 특히 서울시와 한국수자원공사의 양분된(二村) 개발로 현재의 이촌로를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이 상이한 공간 구성을 가지게 됐다.
1968년에는 대한주택공사(LH전신)가 고급 아파트 개념의 한강맨션을 선보이며 모델하우스를 최초로 도입하는 등 아파트 공급의 실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무주택 공무원을 위한 작은 평형의 공무원아파트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야외 수영장을 갖춘 고급 외인아파트도 들어섰다.
1970년대 한강외인아파트 야외 수영장. LH제공 |
반면 이촌2동(서부이촌동)에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과 불량주택지 가림을 목적으로 소형 시영, 시민 아파트가 건설됐다.
1980년대에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로 '리틀 도쿄'라 불릴 정도로 일본 문화의 혼재가 두드러졌다. 또한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가까워 형성 초기부터 강부자, 신성일, 엄앵란 등 많은 연예인이 거주해왔다.
40년 이상 장기 거주자가 많은 이촌동은 '아파트 씨족사회'를 방불케할 정도로 밀도 있는 관계망을 자랑한다.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가 각 1개뿐이라 '온 동네 CCTV'라 불릴 만큼 아이 키우기 안전한 장소로 인식되지만, 동시에 사생활 노출이 쉬워 주민들은 조용히 다니는 경향이 있다.
지리적으로 서울의 정중앙에 위치하면서도 도로, 한강, 철길로 단절돼 '섬'과 같은 동네로 여겨지기도 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이촌동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도시 개발과 주거문화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이촌동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들여다보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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