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충돌] ‘전쟁 개입’ 놓고 美 보수 진영 내분
보수 성향 팟캐스트 진행자 터커 칼슨(오른쪽)이 17일 자신의 방송에서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미국의 이란 공습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외국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대선 공약이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개입 가능성 앞에 흔들리면서 트럼프 지지층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가장 든든한 지지 세력인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핵심 인사들은 트럼프가 외교적 협상 대신 무력 충돌을 선택할 경우 정치적 유산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 전략가 출신의 스티브 배넌은 17일 자신의 팟캐스트 ‘워룸’ 등에서 “이라크 전쟁 때와 똑같은 레토릭이 반복되고 있다”며 트럼프의 이란 개입 가능성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이 전쟁은 미국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또다시 미국이 중동에 개입할 시점이 아니다”라며 “이 전쟁은 트럼프 지지 연합(MAGA coalition)을 깨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의 보수 논객 터커 칼슨도 같은 날 배넌의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지금 미국 제국의 종말을 보고 있다”며 “이 전쟁이 트럼프의 정치생명을 끝장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17일 취재진과 만나 “터커 칼슨은 괴짜”라며 직접 반박했지만 공화당 내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 의원은 즉각 칼슨 편을 들었다. 그는 18일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외국 전쟁·체제 전복·개입주의는 미국을 파괴로 이끈다”고 했다. 보수 성향 방송인 앨릭스 존스는 “터커 칼슨을 공격하는 트럼프는 이제 꿈이 아니라 악몽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고, 보수 논객 캔디스 오언스도 “트럼프가 자기 지지층을 쪼개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격렬한 충돌은 터커 칼슨과 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의 인터뷰에서 벌어졌다. 칼슨은 17일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한 크루즈에게 “이란 인구가 얼마인지 아느냐”고 질문했고, 크루즈가 “모른다”고 답하자 “이란 정권을 전복하자는 사람이 기본 정보도 없다니 무책임하다”고 몰아붙였다. 이 영상은 X에서 하루 만에 2000만회 넘게 조회되며 MAGA 내부 분열의 상징처럼 퍼졌다.
이처럼 트럼프가 기존의 불개입 기조에서 벗어나 이란 개입 가능성을 열어둔 배경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거듭된 설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는 “미국만이 이란 핵 프로그램을 저지할 수 있다”며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고,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초기 공습 성과를 지켜본 뒤 미국의 개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이 핵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판단도 깔렸다. 트럼프는 최근까지 이란과의 핵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미 정보 당국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재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하자 직접 개입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1기 집권 당시였던 2020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무인기 공습으로 제거했던 트럼프가 ‘이란 핵 저지’를 자신의 정치적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는 분석도 백악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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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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