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Cover Story] 여러 호르몬 수용체에 활성화돼 살을 빼면서 부작용까지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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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
글로벌 제약사가 비만 치료제를 두고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체중 감량 효과는 더 크고, 부작용은 더 적은 약품을 내놓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중이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지난달 “‘젭바운드(한국 출시명 마운자로)’를 72주 동안 투약한 환자의 체중 감량률이 20.2%로 같은 기간 (경쟁사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를 투약한 환자(13.7% 감량)보다 높았다”고 발표했다. 배고픔 조절 리모컨 역할을 해주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기반 약물이 비만 치료의 새 지평을 연 이후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은 더 강력한 감량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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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
비만 치료제는 미래 의료 기술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분야로 꼽힌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비만 치료제를 인공지능(AI), 로봇, 사이버 보안 등과 함께 ‘미래에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분야’ 18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맥킨지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40년 최대 2800억달러(약 386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시장 규모(240억달러)의 12배 수준까지 고속 성장할 것이라는 뜻이다. WEEKLY BIZ는 글로벌 전문가들과 함께 차세대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제약사들의 경쟁이 인류 건강에 얼마나 기여할지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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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미사일에 여러 탄두를 탑재하듯
전 세계 연구진들은 최근 비만 치료제라는 ‘미사일’에 ‘탄두’를 추가로 다는 식으로 약물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앞서 2021년 체중 감량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위고비는 ‘기적의 비만약’이라고 불렸다. 이 약물은 음식이 위를 떠나는 속도를 늦추며, 식욕도 억제하는 호르몬(GLP-1)을 모방해 살을 빼게 하는 원리였다. 따라서 이 약물은 GLP-1 수용체만 타깃으로 공략해 음식 섭취에 대한 욕구를 억눌러주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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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그러나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은 감량 효과를 더 높이고 부작용은 더 줄이기 위해 몸 안의 호르몬 수용체 여러 곳을 동시에 공략하는 작전을 쓰고 있다. 마치 미사일 하나에 여러 탄두를 달아 공격하는 식이다. 이 같은 비만 치료제가 일라이릴리가 2023년 내놓은 ‘젭바운드’다.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는 GLP-1 수용체뿐 아니라 ‘당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한다. 일라이릴리 관계자는 “젭바운드는 하나의 펩타이드로 GIP·GLP-1 수용체에 모두 작용할 수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이중 효능제’”라고 했다. 체중을 줄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호르몬 신호의 ‘작동 스위치’가 바로 수용체이기 때문에, 여러 수용체를 공략할수록 감량 효과를 높일 가능성은 커진다. 실제로 젭바운드와 위고비를 비교하는 임상 시험에서 젭바운드를 투약한 시험자의 64.6%가 체중이 투약 전보다 15% 이상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위고비 투약 환자는 10명 중 4명(40.1%) 정도만 몸무게가 15% 이상 줄어들었다. 젭바운드 투약 환자는 허리둘레가 18.4㎝ 줄어들어 위고비(13㎝)보다 몸매 개선 효과도 컸다.
이렇게 여러 수용체를 공략하면 체중 감량 효과는 더 커지고,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대표적인 비만 치료제 부작용은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초석을 놓은 대니얼 드러커 토론토대 교수는 WEEKLY BIZ에 “젭바운드는 뇌에 있는 GIP·GLP-1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해 식욕을 강하게 억제하고, 음식 섭취량을 보다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식욕은 누르고 포만감은 오래
젭바운드처럼 기존 약물에 체중 감량 효과를 높이는 성분을 더한 ‘복합 처방’ 방식은 비만 치료제의 새로운 트렌드다. 비만 치료 전문가인 루이스 애런 미국 와일코넬의대 교수는 “앞으로 2~4개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는 비만 치료제가 계속 개발될 수 있다”고 했다. 비만 치료제의 원조 격인 위고비를 만든 노보노디스크도 GLP-1 수용체 작용제에 아밀린 수용체 작용제를 더한 ‘카그리세마’란 신약을 개발 중이다. 이 약물은 최소 25%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아밀린은 인슐린과 함께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에 작용해 식욕을 줄인다. GLP-1이 식욕을 억누르는 효과를 낸다면, 아밀린은 포만감을 더 오래 지속시킨다. 비만 치료 전문가인 크리슈나 쿠마르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GLP-1 수용체와 아밀린 수용체를 함께 겨냥한 약물이 기대만큼 약효를 발휘한다면) 수술을 통한 비만 치료법을 넘어서는 감량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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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다른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을 개발 중인 연구진들도 여러 수용체를 한꺼번에 겨냥하는 방식으로 신약을 설계하고 있다. 쿠마르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글루카곤 수용체와 신경 펩타이드 Y 수용체(Y2형)를 동시에 겨냥한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비만 치료제는 글루카곤 수용체를 활성화해 간에서 더 많은 지방을 태우도록 하면서, 신경 펩타이드 Y 수용체에도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게 한다. 일라이릴리가 개발하는 레타트루타이드는 세 가지(GIP·GLP-1·글루카곤) 종류의 호르몬 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물인데, 비만이나 당뇨병 외에도 골관절염,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치료에도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GIP·GLP-1·글루카곤 수용체 외에 칼시토닌 수용체까지 총 네 가지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는 비만 치료제도 개발 단계에 있다. 이 약물은 체지방은 많이 줄어들게 하면서도, 근육량은 유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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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주사 대신 먹는 비만 치료제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4월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알약 형태의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오포글리프론’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는데, 최고 용량으로 40주 복용한 결과 체중이 7.3㎏ 줄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릭스 일라이릴리 대표는 “하루에 한 번 편리하게 복용할 수 있는 알약인 오포글리프론은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부작용 잡는 기술 경쟁도 본격화
비만 치료제는 부작용에 대한 걱정 없이 투약할 수 있는 ‘마법의 약’은 아니기에 투약에 주의가 필요하다. 일라이릴리는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와 관련해 “위나 신장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췌장염이나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부작용이 발견되기도 한다. 유럽의약품청(EMA) 관계자는 “GLP-1 기반 비만 치료제가 ‘비동맥성 전방 허혈성 시신경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지난 2~5일 평가 회의를 진행했다”며 “매우 드물지만 비만 치료제가 이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돼 부작용 경고 문구에 추가 표기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비동맥성 전방 허혈성 시신경병증은 시신경에 혈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시력 저하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이다. 한국에서도 위고비가 판매된 지난해 10월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49건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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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이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존 약물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기술적 보완에 힘을 쏟고 있다. 젭바운드는 구토와 메스꺼움 같은 기존 비만 치료제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마르 교수는 “젭바운드가 GIP 수용체에도 작용하면서 구토나 메스꺼움 같은 위 관련 부작용을 많이 완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다면 한 번에 투약하는 약물의 양을 늘릴 수 있어 감량 효과도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살이 빠지면서 근육량도 함께 줄어드는 문제도 새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위고비와 같은 GLP-1 수용체 작용제를 주사하면 살이 빠지면서 근육 손실이 동반된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애런 교수는 “근육량 보전에 도움이 되는 ‘선택적 안드로겐 수용체 조절제(SARM)’나 ‘액티빈 2B 수용체 차단제’ 등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라며 “이 약물들을 GLP-1 기반 비만 치료제와 함께 투약하면 살만 빼고 근육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쪄도 건강 효과는 유지”
암,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 200여 질병을 유발하는 비만은 이른바 ‘관문 질환(gateway disease)’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건 인류 건강 증진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비만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세계비만연맹은 2020년 9억8800만명이었던 비만 인구가 2035년엔 19억1400만명까지 늘 것으로 예상한다. 비만 합병증에 따른 의료 비용과 노동력 손실 등 사회적 비용도 2020년 1조9600억달러에서 2035년 4조3200억달러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비만에 따른 질병 부담을 장애조정수명(DALY·Disability-Adjusted Life Year)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2019년 기준 1억5300만년에 달했다. 장애조정수명은 질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과 장애로 건강하게 살지 못한 기간을 합한 지표로, 건강 손실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비만 때문에 기대 수명보다 일찍 사망하거나 건강하게 살아가지 못한 기간을 모두 합산했더니 1억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비만 치료제가 앞으로 수명 연장과 건강 증진, 삶의 질 개선 등 전 세계인의 건강에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예상이다. 최윤선 맥킨지 부파트너는 “(적절한 비만 치료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와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비만이 초래하는 삶의 질 저하와 개인 정신 건강 차원의 문제에도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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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
전문가들은 비만 치료제를 투약하다가 중단한 뒤 다시 체중이 늘더라도 건강 개선 효과는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위고비와 같은 GLP-1 기반 약물을 주사하다가, 투약을 멈추면 다시 살이 찌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일시적인 체중 감량이 중장기적으로 치명적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영국 정부 차원의 비만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나비드 사타르 글래스고대 교수는 “체중 감량 효과가 향후 동맥경화성 심혈관 질환이나 심부전을 예방하는 일종의 ‘유산 효과(legacy benefit)’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체중을 줄이면 염증을 유발하고 장기를 망가뜨리는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는데 다시 살이 찌더라도 이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애런 교수는 “체지방이 줄면 염증을 일으키고 장기에 손상을 유발하는 호르몬 수치도 낮아진다”며 “다시 살이 찌더라도 일정 기간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만 치료제의 비싼 가격 문제도 서서히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현재는 고가의 약값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비만 환자들은 비만 치료제의 혜택을 보기 어려운 상황인데, 가격이 내려가면 보다 광범위한 건강 증진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고비의 한국 내 공급 가격은 4주 기준 37만원 수준인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약품이라 실제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40만~80만원인 상황이다. 최윤선 부파트너는 “노보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 주성분)에 대한 독점권은 2030년대 초에 만료될 예정”이라며 “세마글루타이드에 대한 제너릭(복제약)이 만들어지면 비만 치료제 가격도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비만 치료제의 새 효능에도 주목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 효과 외에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비만 치료제의 본래 기능인 ‘배고픔을 억누르는 효과’를 넘어 ‘다른 욕망을 억제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비만 치료제는 쾌감·즐거움과 관련한 도파민 분비를 제어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전문가는 비만 치료제로 알코올이나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 마약에 대한 갈망까지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며 비만 치료제는 단순히 체중 감량을 도와주는 약물이 아니라 ‘21세기 만병통치약’으로 도약할 기세다. 쿠마르 교수는 “비만 치료제는 지방간 치료나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 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며 “다양한 질환에 대한 효과가 입증되면 더 많은 사람이 장기간 투약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혹시 모를 부작용을 찾아낼 약물 감시 활동 역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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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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