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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억 받고 나라 팔아…매국 ‘2관왕’ 을사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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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억 받고 나라 팔아…매국 ‘2관왕’ 을사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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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순,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날 박제순의 이름은 이완용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관료 출신이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일본군과 협력해 농민군을 진압했다. 박제순은 온건 개화파였다. 이런저런 개혁 사업을 벌였으나, 기득권을 양보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차차 일본의 한국 지배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었다.



1905년에 맺은 을사늑약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대한제국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국제외교에 힘을 쏟던 터라, 외교권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박제순은 외교부 장관(외부대신)으로서 을사늑약에 서명을 했다. 이완용, 박제순 등 조약에 서명한 다섯명의 고위 관료가 ‘을사오적’이라는 이름으로 욕을 먹었다.



1907년에는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인사권과 행정권을 빼앗고 군대를 해산했다. 이때 박제순은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때였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다. 1910년에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맺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이때 박제순과 이완용 등이 서명을 했다. 경술년에 일어난 일이라서 서명한 관리들이 ‘경술국적’으로 불렸다.



1905년, 1907년, 1910년 세번 모두 앞장선 이완용은 ‘삼관왕’이라고, 1907년에 한번 빠진 박제순은 ‘이관왕’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1909년에 이완용이 암살 미수 사건으로 큰 부상을 당하고 물러나 있는 동안 박제순이 총리 권한대행(내각 총리대신 서리)을 맡아 보았으므로, 나라 망하는 일에 기여(?)한 것은 두 사람의 낫고 못함을 가리기 힘들다.



일본은 박제순한테 자작 작위를 주고 돈 10만원을 내렸다. 금값을 기준 삼아 계산하면 지금 돈 110억원쯤. ‘나라 판 값’을 톡톡히 받은 셈이다. 박제순은 1916년 6월20일에 죽었다. 아들 박부양은 당시 흔치 않던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를 내 입길에 올랐다. 손자 박승유는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한 일로 이름이 남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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