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찾은 베트남 학살 피해생존자 두 응우옌티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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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인 두 명의 응우옌티탄씨가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7층 뉴스룸국을 찾아 활짝 웃고 있다. 왼쪽이 퐁니 출신 응우옌티탄, 오른쪽이 하미 출신 응우옌티탄 씨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여러 번 증언했는데… 이제 나이를 더 먹고 있는데… 그동안 한국 정부에 애타게 호소했는데… 왜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는 건가요. 새 대통령님에게 기대를 겁니다.” (하미 출신 응우옌티탄)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오늘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한국 시민분들께 감사드려요. 한국 정부가 학살의 진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 상소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퐁니 출신 응우옌티탄)
이름이 같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두 사람이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했다. 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 초청으로 한국인들과 ‘베트남전 진실규명법’(가칭) 발의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방한한 이들은, 이날 아침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영등포구청역 인근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첫 일정으로 한겨레를 찾았다.
이들은 베트남전 기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언론이 한겨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사옥을 꼭 보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두 응우옌티탄은 9층 옥상정원, 7층 뉴스룸국, 6층 한겨레21부, 지하 1층의 윤전 시설 등을 둘러보면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한겨레 사옥이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워 놀랐다”며 활짝 웃었다. 두 탄씨에게 한겨레를 찾은 소감과 6일간의 한국 방문에 거는 기대를 들어보았다.
두 탄씨는 어린 시절 고향인 꽝남성 퐁니와 하미마을에 진입한 한국군 해병대에 의해 참화를 겪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퐁니의 탄(65)씨가 8살, 하미의 탄(68)씨가 11살 되던 해였다. 각각 1968년 2월12일, 2월24일 발생한 일이다. 두 마을에선 각각 74명과 135명의 사망자가 발견됐다. 두 탄씨는 모두 가족 5명씩을 잃고 본인들은 복부에 총상을 입거나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과 항소심에서 승소한 퐁니의 탄씨는 현재 한국 정부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하미의 탄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신청했으나 “외국에서 발생한 피해는 조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사 개시부터 막혔고, 이후 행정소송을 내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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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인 2000년 6월27일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회원 2000여명이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전투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두 탄씨에게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두 탄씨가 증언하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 가짜뉴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2000여명이 25년 전인 2000년 6월27일 한겨레신문사를 습격해 기물과 유리창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언론사를 상대로 한 최대의 습격 사건이자, 베트남전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온 ‘반공 성전’이라는 기억이 ‘민간인 학살’이라는 새로운 기억과 물리적으로 거세게 충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두 탄씨는 25년 전 참전군인들이 난동을 벌인 현장에서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막아주는 사람은 없었느냐“, “피해를 어떻게 복구했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다. 참전 군인들에 남기는 말을 부탁하자 “퐁니와 하미에서 일어난 일이 어떻게 가짜가 될 수 있는가. 진실을 인정하며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두 탄씨는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벌어지고 6개월 만에 정권교체가 된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57년 전 베트남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도 계엄령이 떨어진 직후였다. 1968년 설날을 기점으로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이 총공세(구정 대공세)를 벌이자 남베트남 정부는 계엄을 선포했고 야간통행금지령 등으로 도시 간 이동도 제한됐다. 당시 설을 맞아 고향에 왔다가 계엄에 발이 묶여 학살을 당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퐁니의 탄씨는 “우리는 전쟁 기간에 계엄을 했지만, 한국은 평화로운데 왜 계엄을 한 거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미의 탄씨는 “이번에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 프로필을 자세히 보았다. 고생을 엄청 한 분이더라”며 “이 대통령이 우리가 당한 고통을 잘 공감해주시고 연대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겨레 방문을 마친 뒤 한강을 넘어 서초동 대법원과 서울행정법원을 향해 떠났다. 두 탄씨가 이번 방한에서 가장 기대한 일정이다. 이들은 국가배상 소송의 마지막 판결을 내릴 대법원 앞에서, 이날 마침 변론기일이 잡힌 행정법원에서 각각 학살을 증언했다. 이어 19일에는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만나고, 20일엔 시민들과 베트남전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과의 대화(GV)를 할 예정이다. 21일엔 민간인학살을 증언한 참전 군인과의 토크 프로그램, 22일엔 전쟁기념관 다크투어를 진행하고, 마지막 날인 23일엔 용산 대통령실에 청원서를 제출한다. 청원서의 제목은 ‘새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 진실규명 촉구 청원’이다.
두 탄씨의 주장은 단순하다. “학살은 진실이다. 진실을 인정하라.”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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