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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란의 심장…“고속도로 10시간 갇혔다” 테헤란 피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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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이란의 심장…“고속도로 10시간 갇혔다” 테헤란 피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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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공개된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이란 테헤란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쪽 방향으로 향하는 카라지-찰루스 도로의 극심한 교통 체증 모습을 보여준다. 로이터 연합뉴스

16일 공개된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이란 테헤란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쪽 방향으로 향하는 카라지-찰루스 도로의 극심한 교통 체증 모습을 보여준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등 미국이 참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면서, 이란 수도 테헤란 사람들이 대거 피난길에 올랐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수도 테헤란에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즉시 테헤란을 떠나라”고 한 다음날인 17일(이하 현지시각), 900만명이 넘게 사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도심은 텅 비다시피 했다. 외신은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처럼 보인다”(AP),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를 떠난 것 같다”(가디언)는 현지인의 말을 전했다. 은행과 일부 관공서를 제외하면, 도시 대부분이 활동을 멈췄다. 물과 생필품을 사려는 이들로 붐볐던 마트와 시장도 거의 문을 닫았다. 2022년 대규모 반정부시위·코로나 때를 제외하면 문을 닫지 않았던 현지 시장 ‘그랜드바자르’도 이날 폐쇄됐다.



반면 테헤란에서 다른 도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피난 차량으로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차량당 10리터로 주유를 제한한 주유소엔 피난 차량에 연료를 채우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시민들은 불꽃이 이는 도시를 뒤로한 채, 이스라엘 전투기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가운데 탈출에 나섰다. “10시간 넘게 도로에 갇혀 있다시피 하며 혹시 고속도로에 공습이 있진 않을지 걱정했다”고 한 테헤란 시민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15일, 테헤란 북서부 석유 저장고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차량들이 고속도로 위에서 정체되어 있다. AFP 연합뉴스

15일, 테헤란 북서부 석유 저장고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차량들이 고속도로 위에서 정체되어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17일 밤부터 18일 새벽 사이 테헤란에서 또다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공군은 미사일 발사기지와 저장시설 12곳을 타격했고, 테헤란 전역에서 공습과 폭발음이 이어졌다.



테헤란엔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할 방공호나 대피 시설이 부족하다. 이란은 지하철을 임시 대피소로 개방하고, 모스크로 대피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얼마나 안전할지는 미지수다. 민간인 사상자의 모습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퍼지며 이미 많은 주민이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엔엔 기자는 “상황이 악화하면서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 뒤 수많은 차량이 (테헤란에서 빠져나가는) 서쪽 도로에 줄을 서고 있다”며 “현 이란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조차, 이스라엘의 공습 탓에 사이에 낀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연락해 온다”고 전했다.



아직 테헤란에 남아 있는 사람은 떠날 수 없는 처지인 경우가 많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이동 수단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등 피난을 갈 경제적 여력이 없거나, 정부가 휴가를 내주지 않는 공무원 등이 해당한다. 반정부 시위에 나섰던 주요 인물들이 수감돼 있는 에빈 교도소도 테헤란 북부에 있다.



현재 이란에서는 주민 동요를 막으려는 당국의 언론 통제가 심해지고 있다. 이란 당국은 이스라엘에 정보를 유출하고 거짓 소식을 흘려 공포 여론을 조장한 혐의로 수십명을 체포했다. 국제 전화는 불통이고, 인터넷 연결도 끊기거나 느려졌다. 국제 모니터링 단체인 넷블록스(NetBlocks)는 이란 내 인터넷 트래픽이 50%가량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과거 시위나 전쟁 시에도 인터넷 차단 조처를 한 전례가 있다. 이란 당국은 ‘왓츠앱’ 등 외산 메신저를 이용하면 이스라엘에 정보가 넘어간다고 17일 오전 주장하기도 했다. 왓츠앱 쪽은 “허위 주장이며,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이 시기에 서비스를 차단하려는 핑계 아닌지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군은 18일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페르시아어로 ‘테헤란18구 주민들은 해당 지역에서 대피하라’는 글을 올리며 또다시 공습을 예고했으나, 이란에서 엑스는 접속이 차단돼 있어 우회접속(VPN)하지 않고서는 사용이 불가능한 서비스다. 인터넷 연결도 여의치 않아, 해당 대피 명령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테헤란18구는 이란 공군이 이용 중인 메흐라바드 국제공항 남쪽에 위치하며, 인구밀도가 높고 가난한 지역이기도 하다.



16일 공개된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이란 테헤란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쪽 방향으로 향하는 카라지-찰루스 도로의 극심한 교통 체증 모습을 보여준다. 로이터 연합뉴스

16일 공개된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이란 테헤란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쪽 방향으로 향하는 카라지-찰루스 도로의 극심한 교통 체증 모습을 보여준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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