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는 다 생각이 있었다. 우선 공·수 모두에서 어린 시절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팀의 주전 2루수 개빈 럭스를 곧바로 트레이드하며 중복 자원 하나를 덜어냈다. 팀의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크리스 테일러, 미겔 로하스는 2025년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만큼 김혜성을 잘 적응시켜 앞으로 요긴하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 행보가 흥미를 모았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재계약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또 하나의 유틸리티 자원인 엔리케 에르난데스(34)를 다시 데려온 것이다. 다저스는 김혜성의 영입, 럭스의 트레이드에 이어 에르난데스와 1년 650만 달러에 계약했다. 김혜성을 영입한 판에 굳이 에르난데스까지 다시 데려온 것은 그 또한 중복 투자라는 시선이 있었다.
에르난데스는 201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2년 동안 뛴 베테랑 선수다. 화려하게 빛나는 선수는 아니지만 넓은 포지션 활용도를 앞세워 다저스의 사랑을 받은 선수이기도 했다. 다저스에서만 무려 9시즌을 뛰면서 17일(한국시간)까지 886경기에 나갔다.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한 경력이 있다.
그런 에르난데스는 올해도 변함없이 중용되고 있다. 테일러의 방출 이후에도 입지는 굳건하다. 시즌 58경기에 나갔고, 여전히 많은 포지션을 소화 중이다. 1루수, 2루수, 좌익수, 3루수, 중견수까지 모두 소화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투수로도 등판해 팬들에게 큰 재미를 주고 있다. 타구에 부상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 헬멧을 쓰고 등판하는 에르난데스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공을 던지며 팬들과 동료들의 폭소를 자아내고 있다.
에르난데스는 올 시즌 벌써 네 번이나 마운드에 올랐다. 2018년 1경기, 2024년에는 4경기에 등판한 경험이 있는데 올해 4경기에서 개인 최다(?)인 5이닝을 던졌다. 야수 등판이라 당연히 성적이야 좋지 않지만,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큰 점수차라고 해도 이기는 상황에서는 야수를 내기 쉽지 않은데 그만큼 생각보다 잘 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에르난데스의 잦은 투수 등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4경기 중 3경기에서는 1실점 이하로 막았다. 자기 임무를 완벽하게 했고, 결과만 놓고 보면 전문 투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실적을 낸 것이다. 앞으로도 등판이 꽤 많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에르난데스가 내년에도 다저스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 1년 계약을 했고, 이제 30대 중반이며, 여전히 공격 성적은 특별하지 않다. 시즌 58경기에서 타율 0.210, 출루율 0.276에 머물고 있다. 다저스에도 올라와야 할 내야 유망주들이 있어 에르난데스가 자리를 비켜줘야 할 상황이다. 유틸리티 플레이어에 가끔 투수까지 겸업하는 에르난데스의 빈자리를 누가 메울지도 관심사가 됐다. 확실한 것은 그 유쾌함은 메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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