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여성을 붙잡아라"... 청년 돌아온 일본 지자체의 '여성 친화 마을 만들기과'

한국일보
원문보기

"여성을 붙잡아라"... 청년 돌아온 일본 지자체의 '여성 친화 마을 만들기과'

속보
서울 송파 방이동 아파트 화재 진압 중..."심정지 2명 이송"
[소멸: 청년이 떠난 자리]
<하> 다시, 함께 성장하는 그곳
임신 때부터 안도감 주는 日쓰쿠바미라이
'여성'에 초점 맞추자 젊은 층 인구 증가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고심

편집자주

지난 20여 년간 '균형발전'을 외치지 않은 정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지방소멸 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출생, 가계부채 상승으로 이어지는 지방소멸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0%대로 끌어내릴 수 있는 최대 리스크입니다. 이런 기로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일보는 지방을 떠난 청년들의 시선으로 위기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 해법을 모색해봤습니다.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미라이시 부모와 아이들이 13일 시내 출산·육아 지원 시설인 '오야코마루마루센터'에서 놀고 있다. 아이들 놀이 공간 옆에는 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쓰쿠바미라이=류호 특파원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미라이시 부모와 아이들이 13일 시내 출산·육아 지원 시설인 '오야코마루마루센터'에서 놀고 있다. 아이들 놀이 공간 옆에는 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쓰쿠바미라이=류호 특파원


임신신고서를 낼 때부터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인식하도록 만들었죠.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미라이시 오야코마루마루센터장

지난 13일에 찾은 '오야코마루마루서포트센터(이하 센터)'는 컴퓨터 키보드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곳이었다. 0세부터 미취학 아동이 뛰어노는 놀이방과 공무원들의 업무 공간이 분리대 하나 없이 붙어 있었다. '부모·자녀 일을 온전히 지원한다'는 뜻의 시설 명칭처럼, 부모가 이곳에서 아이와 놀아 주다 육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옆에서 일하는 조산사, 보육사, 사회복지사를 찾아가면 된다.

이런 구조는 특히 여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임신 진단을 받은 뒤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으려면 이곳에 '임신신고서'를 내야 한다. 임신을 알리는 순간부터 놀이방과 전문가들을 보며 막막하기만 한 출산, 육아, 일·가정 양립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여성들이 '지역이 함께한다'는 안도감을 느낄 방법을 고민한 결과다.

센터의 슬로건은 '엄마, 아빠를 혼자 두게 하지 않는다'로, 지역사회가 육아에 함께한다는 믿음을 줘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려는 뜻을 담았다. 임신 7개월 차부터 태어날 아기가 첫돌을 맞을 때까지 보육 전문 코디네이터가 붙어 밀착 관리하고, 자연스럽게 센터로 유도한다. 센터 보육사는 "여성이 육아 고민에 고립되지 않게 돕고 있다"며 "아이들이 노는 곳인 동시에 지역사회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장소"라고 말했다.

여성이 상담하기 편한 시설 되자 늘어난 인구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미라이시 주민들이 쓰쿠바익스프레스 '미라이다이라역' 앞을 지나가고 있다. 쓰쿠바익스프레스는 수도 도쿄와 이바라키현을 잇는 철도다. 쓰쿠바미라이=류호 특파원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미라이시 주민들이 쓰쿠바익스프레스 '미라이다이라역' 앞을 지나가고 있다. 쓰쿠바익스프레스는 수도 도쿄와 이바라키현을 잇는 철도다. 쓰쿠바미라이=류호 특파원


시가 육아 부담을 덜어 주려 한 건 젊은 층이 지역 거주를 고려할 때 고민하는 요소를 최대한 해결해 주려 했기 때문이다. 2005년 8월 도쿄와 이바라키현까지 약 58㎞를 잇는 철도 '쓰쿠바익스프레스'가 개통하면서 월세가 비싼 도쿄에 살기 버거워하는 젊은 세대가 대거 이주했다. 센터가 있는 미라이다이라역에서 쓰쿠바익스프레스를 타면 도쿄 시내까지 약 40분이면 갈 수 있다. 직장이 있는 도쿄와 멀지 않고, 퇴근 이후에는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지역인 셈이다.

시는 이때부터 센터 설립 등 젊은 층의 지역사회 정착 방안을 고민했다. 노력의 결과 2020년 정부 인구총조사에서 쓰쿠바미라이시의 25~39세 기혼자 비율은 59.3%로 조사돼, 이바라키현(현 평균 49.3%) 내에서 이 비율이 가장 높은 지자체에 올랐다.

시는 특히 여성 지원책에 중점을 뒀다. 남성보다 여성의 탈(脫)지방 움직임이 강해서다. 국토교통성 2019년 조사 결과 도쿄(수도권)로 이주한 20~24세 인구는 여성이 4만4,380명으로 남성(3만6,605명)보다 훨씬 많았다. 다른 연령층은 남성이 더 많았는데, 20~24세는 취직을 고민하는 세대다. 쓰쓰이 준야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젊은 층은 경력을 쌓고자 거주지를 옮길지 고민한다"며 "도시는 젊은 여성이 할 일이 많고 남성 우월적 문화가 덜하다. 여성이 도시권으로 이동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남성 우월 문화' 덜한 도시 택하는 2030 여성



성평등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성평등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남성은 물론 여성도 살기 좋은 지역이어야 정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다른 지자체들도 이러한 점에 착안해 젊은 여성 붙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동안 여성 지원 정책이 '어머니'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여성 자립'에 힘을 쏟는 곳이 늘었다. 도호쿠 북부 지역인 아키타현이 그 예다. 일자리 부족과 기업 및 지역사회 내 성차별적 분위기 등 여러 이유로 젊은 여성의 도쿄 이주 현상이 두드러졌던 이곳은 2021년부터 '젊은 여성 현내 정착 촉진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직장 내 여성 전용 화장실, 육아 공간 설치 등 '여성에게 매력적인 직장 만들기 가속화 사업'을 통해 여성 친화적 업무 공간을 만들고, '아키타 여성 활약·양립 지원 센터'를 만들어 여성들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 도쿄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요구를 파악해 현에 적용하는 '아키타와 이어지는 젊은 여성 네트워크 구축'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평등 확산 사업에 더 신경 쓰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성 관련 인식 개선에 중점을 둔 사업이다. 아키타현은 지난해부터 현 내 곳곳을 돌며 성차별 해소를 위한 '상호 이해를 위한 워크숍' 행사를 열고 있다. 아키타현 관계자는 "기업과 여성 직장인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부터는 성평등을 확산할 각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 부흥 정책 짤 때 중요한 건 '일'"



야마가타현 오키타마지구에서 카페 '구마키치노엔'을 운영하는 엔도 유키가 손님에게 낼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 야마가타현은 지난 1월 24일 자체 유튜브 계정에 오키타마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 '오키타마 빛나는 여성 인터뷰'를 공개했다. 야마가타현 유튜브 채널 캡처

야마가타현 오키타마지구에서 카페 '구마키치노엔'을 운영하는 엔도 유키가 손님에게 낼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 야마가타현은 지난 1월 24일 자체 유튜브 계정에 오키타마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 '오키타마 빛나는 여성 인터뷰'를 공개했다. 야마가타현 유튜브 채널 캡처


지역 여성의 활약상을 알리며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지자체도 있다. 야마가타현은 자체 유튜브 계정에 '오키타마 빛나는 여성 인터뷰' 동영상을 공개했다. 현내 오키타마 지역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조명해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오길 고민하는 여성에게 '롤 모델'을 제시하려는 취지다. 한때 젊은 층 인구 감소로 시름에 빠졌던 도쿄 도시마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나섰다. 젊은 여성에게 정책 제언을 받는 '도시마 F1 회의'와 여성 지원책을 연구하는 부서 '여성 친화적 마을 만들기과'도 만들었다.

지자체의 이러한 움직임은 여성이 지역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젊은 층 정착의 핵심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쓰쓰이 교수는 "젊은 층의 지방 거주 절대 조건은 '일'"이라며 "안정된 일과 직장이 있다면 젊은 층은 지방에 정착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 (지방 부흥 정책을 짤 때) 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상> 청년, 지방과 헤어질 결심
    1. • ‘최고의 직장’을 떠날 결심 “너 여기서 계속 살 거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18210001385)
    2. • "떠난다면, 보내 줄 수밖에"... 청년도, 기업도, 경쟁력도 놓치는 지역의 속앓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000180002963)
  2. ② <중> 오답 속 청년을 부를 해법
    1. • 10년째 주말이면 고요한 혁신도시... "수도권 쏠림에 질식사할 지경"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14540005674)
    2. • '해수부 부산 이전' 포문 연 이재명 정부 균형발전, 성공 열쇠 3가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416270005449)
  3. ③ <하> 다시, 함께 성장하는 그곳
    1. • "여성을 붙잡아라"... 청년 돌아온 일본 지자체의 '여성 친화 마을 만들기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5490005581)
    2. • 청년 다시 모이는 곳 '세 가지' 공통점 ①외지 청년 ②개방적 문화 ③초연결 생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1500001960)
    3. • "지역 균형발전? 당사자성 충만한 주체 발굴해 지원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7540005296)


쓰쿠바미라이=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