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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마왕’ 이름 나온 무령왕릉… 사람 뼈 분석해 주인 찾은 무왕릉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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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마왕’ 이름 나온 무령왕릉… 사람 뼈 분석해 주인 찾은 무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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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릉 주인 어떻게 밝혔나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마’ 확인
“사마왕(斯麻王)? 아아… 바로 무령왕이다!”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 발굴 조사가 있던 1971년 7월 8일 오후, 벽돌을 걷어내고 무덤 속으로 들어간 발굴단의 눈에 석판에 적힌 글자가 보였다. ‘백제 사마왕’. ‘사마’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25대 무령왕의 이름이었다. 당시 발굴단은 “가슴이 터질 순간”이라고 회고했는데,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실한 백제 왕의 무덤이 처음으로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무령왕릉의 형태가 바깥에서 보기엔 무덤처럼 보이지 않아 도굴을 면했기 때문에 지석(誌石·죽은 이의 인적 사항을 기록해 묻은 석판)의 명문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주인공의 실체가 드러난 백제 왕릉은 전북 익산의 쌍릉이었다. ‘고려사’에는 쌍릉이 백제 30대 무왕(재위 600~641)과 그 왕비의 무덤이라고 기록돼 있다. 무왕의 고향도 익산이었다. 그런데 쌍릉은 ‘대왕릉’과 ‘소왕릉’ 두 무덤으로 이뤄져 있는데, 과연 어느 쪽이 무왕의 무덤인 것일까?

2018년, 대왕릉에서 오래 전에 나온 102조각의 사람 뼈를 정밀 분석한 결과 ‘살아 있을 때 넘어져 다친 적이 있는 키 161~170㎝의 60대 이상 남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조선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 161.1㎝와 비교하면 큰 편인데 ‘삼국사기’는 무왕이 ‘풍채가 훌륭하다’고 기록했다. 유골 주인공의 사망 연도는 서기 620~659년으로 추정됐는데 무왕이 세상을 떠난 것은 641년의 일이었다. 다만 쌍릉 중 소왕릉은 누가 묻힌 것인지 확인이 어려웠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쌍릉 중 대왕릉은 두 번째로 주인이 확인된 백제 왕릉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근왕이 묻혔을 가능성이 커진 공주 왕릉원 2호분은 세 번째로 주인공이 밝혀진 백제 왕릉이 된 셈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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