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에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이재명 정부 ‘기후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성장’ 전략의 한 방안으로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성장·발전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큰 약속을 뒷받침하는 작은 약속 가운데 하나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화석연료에서 탈피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는 ‘전환’을, 단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의무일 뿐 아니라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도 삼겠다는 것이다. ‘기후환경에너지비서관’을 신설 ‘에이아이(AI)미래기획수석’ 아래에 배치한 대통령실 조직 개편 등에서도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탄소중립 산업 전환으로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공약집)하는 모양새다.
사실 이런 접근법은 새롭지 않다. 이미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말을 들고나와 이것저것 ‘장사’를 했다. 실상은 4대강 사업 등 “토건 사업에 녹색 칠만 한 꼴”이란 비판이 많았다. 코로나19가 엄습했던 2020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뉴딜’을 꺼내 들었다. 기후 정책이라기보단 돈을 돌게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경제 정책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엔 우리나라 최초로 ‘탄소중립’(온실가스 순배출량 0)을 목표로 삼는 법안이 발의됐는데, 여기에도 ‘녹색성장’이란 말이 따라붙었다. 그 결과 현재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기본법의 이름엔 ‘탄소중립·녹색성장’이 함께 붙어 있다. 이 정도면 ‘성장 없인 절대 탄소중립을 할 수 없다’는 완고한 의지마저 느껴진달까.
기후위기 대응과 경제 성장은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일각에선 “화석연료에서 탈피하면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탄소배출이 줄어드는 ‘탈동조화’가 가능하다”(녹색성장)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선진국들의 단기적 사례만 있을 뿐이며, 이를 통해 전지구적 탄소중립을 이루기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맹목적인 경제 성장을 멈추거나 줄일 수 있다면(탈성장), 기후위기 대응에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누가 그 방법에 동의하고 함께하겠는가? 결국 현재로선 비록 불안한 결합이더라도 탄소중립·녹색성장이 정치적 차원에선 ‘차선의 기획’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미국(트럼프 시기 제외), 중국 등 많은 나라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둘 사이엔 모순이 상존하고, 언제든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혐오와 반발심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 극우 포퓰리즘은 이를 파고든다. 유럽연합이 ‘그린딜’을 추진하는 동안, 유럽의 여러 극우 정당들은 이것이 “쓸데없는 규제를 도입해 에너지 가격을 급등시켜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고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으로 득세했다. 미국에선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대통령이 두번째 집권을 했는데, 그가 취임하자마자 서명한 행정명령은 이전 정부의 청정에너지 지원을 폐기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다시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의 책임을 되레 기후위기 대응에 물으려 하는 이 ‘그린래시’(greenlash)의 거센 흐름은, 여태 관성처럼 반복해온 탄소중립·녹색성장 전략이 과연 적절한가 되묻게 만든다.
별달리 내세울 만한 슬로건마저 없었던 윤석열 정부 시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어온 거대한 흐름에서 뒤처지기까지 한 상태다.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관성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질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시급한 과제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성장 없인 탄소중립을 할 수 없다’가 아닌, ‘탄소중립 없인 성장할 수 없다’로 나아갈 순 없는가? 국내총생산(GDP) 수치를 키우는 것만이 ‘성장’인가? 소득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풍요를 성장의 척도로 삼을 순 없는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에 어떤 이득을 주는가?…. 뻔한 녹색성장, 그린뉴딜을 반복만 하는 것은 ‘실용주의’ 정부가 택할 길이 아니다. 그린래시를 선제적으로 제압할, 더 과감한 ‘최선의 기후 기획’이 필요하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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