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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면, 보내 줄 수밖에"... 청년도, 기업도, 경쟁력도 놓치는 지역의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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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면, 보내 줄 수밖에"... 청년도, 기업도, 경쟁력도 놓치는 지역의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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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근시일내 김정은 방러 또는 푸틴 방북 계획 없어"<러 매체>
[소멸: 청년이 떠난 자리]
<상> 청년, 지방과 헤어질 결심
일자리·인프라·네트워크 부족에 이탈 계속
"인재 없다"며 떠나는 기업까지... 악순환
'지역 붙박이' 공기업·공공기관은 자구책 골몰
"지역 죽으면 서울도 같이 죽는다... 대책 절실"
"지역에도 탄탄한 미래 있다는 것 보여줘야"

편집자주

지난 20여 년간 '균형발전'을 외치지 않은 정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지방소멸 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출생, 가계부채 상승으로 이어지는 지방소멸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0%대로 끌어내릴 수 있는 최대 리스크입니다. 이런 기로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일보는 지방을 떠난 청년들의 시선으로 위기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 해법을 모색해봤습니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경성대·부경대 인근 대학가에 5월 26일 대학생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여러 대학과 중고등학교가 밀집한 덕에 이곳 상권은 비교적 활발하다는 주변 상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임대를 써 붙여놓은 곳들이 많았다. 부산=오지혜 기자

부산 남구에 위치한 경성대·부경대 인근 대학가에 5월 26일 대학생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여러 대학과 중고등학교가 밀집한 덕에 이곳 상권은 비교적 활발하다는 주변 상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임대를 써 붙여놓은 곳들이 많았다. 부산=오지혜 기자


우리 교수진이 연구 성적만 봐도 더 역량이 있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어요. 그런 자대 대학원을 뒤로 하고 한 서울 사립대로 간다는 거예요. 뒤로 넘어갈 일인데, 어쩌겠어요. 잡을 수가 없어요.

부산을 대표하는 국립대인 부산대 총장을 지낸 차정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부산대에서 열심히 키운 인재를 또 한 번 서울로 뺏겼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온전히 납득할 순 없지만 그 학생에게도 또 다른 판단의 지표들이 있었을 테다. 대학의 위치, 그러니까 서울이란 거대한 소용돌이의 힘도 분명 작용했으리라 그는 짐작했다.

사내 변호사 2년째 0명... 청년 인재 모집 어려운 지역



2013년에서 2023년 사이 증가한 전체 취업자 수의 61%가 수도권에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3년에서 2023년 사이 증가한 전체 취업자 수의 61%가 수도권에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번엔 지원자가 있어? 또 없으면 안 되는데.

울산우정혁신도시로 이전한 한 공단 인사팀. 요즘 제일 골칫거리는 2년째 공석인 사내 변호사 자리다. 수도권에 있을 땐 두 명씩도 있었는데 지금은 씨가 말랐다. 계약직과 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공고를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입사지원서가 서류 접수 마감일까지 한 장도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2명이 지원한 적도 있는데 잘 안 됐어요. 보통 구직자들이 동시에 여러 곳에 지원하잖아요. 동시 합격된 경우에는 '같은 조건이면 울산 말고 서울 간다'는 거 아닐까요." 인사담당자는 한숨을 쉬었다. 변호사보다 비교적 인력 풀이 넓은 석·박사 채용 경쟁률도 과거 4, 5대 1에서 2, 3대 1로 뚝 떨어졌다.

젊은 인재 유치가 힘들다는 하소연은 지역 곳곳에서 들린다. 국립대학, 공공기관, 사기업 등 유형을 가리지도 않는다. 고용 안정성이 낮은 일자리는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렵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해 동안 올린 채용 재공고 목록. KISTEP 홈페이지 캡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해 동안 올린 채용 재공고 목록. KISTEP 홈페이지 캡처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공공기관 이전 작업의 마침표를 찍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도 요즘 채용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 말 서울 양재에서 충북혁신도시로 옮긴 뒤로는 육아휴직 대체인력 채용 판도가 확 바뀌었다. 이전에는 비정규직 연구원이라도 지원자가 꾸준히 있었는데, 이제는 재공고도 잦다. 아예 지원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빈번해서다. 휴직 대체자를 못 뽑으면 그 부담은 오롯이 기존 직원들이 져야 한다. 업무가 늘 수도 있고, 당연히 휴직을 해야 하는 직원마저 불편해질 수 있다.

수도권과 벌어지는 일자리 격차... '알바'마저도



2013년과 2023년을 비교했을 때 취업자 수 증가율이 높았던 상위 20개 시군 중 12곳이 경기도 신도시였다. 순위권에 든 비수도권 지역도 행정수도·혁신도시거나 수도권과 가까운 시군이 대다수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3년과 2023년을 비교했을 때 취업자 수 증가율이 높았던 상위 20개 시군 중 12곳이 경기도 신도시였다. 순위권에 든 비수도권 지역도 행정수도·혁신도시거나 수도권과 가까운 시군이 대다수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애초에 청년이 떠난 건 역설적이게도 일자리 때문이다. 적성·처우 등을 고려해 이직 시도가 잦은 현 청년세대에게 지역은 좁디 좁은 어장이다. 한국고용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전보다 취업자 수가 증가한 상위 20개 시군 중 12곳이 수도권 신도시였다. 지역의 일자리 규모가 수도권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는 의미다. 임금 분포도 바뀌었다. 지역을 임금순으로 나열하면 2013년까지만 해도 상위 10개 시군에 3개가 전남 광양·울산 등 비수도권이었는데, 2023년에는 세종뿐이었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경성대·부경대 인근 대학가에 5월 26일 임대 광고가 붙어 있다. 여러 대학과 중고등학교가 밀집한 덕에 이곳 상권은 비교적 활발하다는 주변 상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임대를 써 붙여놓은 곳들이 많았다. 부산=오지혜 기자

부산 남구에 위치한 경성대·부경대 인근 대학가에 5월 26일 임대 광고가 붙어 있다. 여러 대학과 중고등학교가 밀집한 덕에 이곳 상권은 비교적 활발하다는 주변 상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임대를 써 붙여놓은 곳들이 많았다. 부산=오지혜 기자


아르바이트 자리마저도 수도권이 많다. 이런 현상은 최근 동남아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까지 지방 대신 수도권을 찾게 한다. 유학생 흐름을 눈여겨봐 온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우수한 유학생들까지 수도권으로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학 이름도 영향이 있겠지만 학교를 다니며 용돈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 등을 하기에도 수도권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일자리를 구해도 걸림돌은 줄줄이 남는다. 업계 간 네트워킹을 하려면 기업과 사람이 많은 수도권으로 가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기도 하고, 교통·의료시설 등 인프라 부족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일자리 없어 떠나고, 인재 없어 떠나고... 악순환의 고리



2013년 월평균 상대 임금이 가장 높은 10개 시군 중 비수도권 지역은 세 곳이었지만, 2023년에는 한 곳에 불과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3년 월평균 상대 임금이 가장 높은 10개 시군 중 비수도권 지역은 세 곳이었지만, 2023년에는 한 곳에 불과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젊은 인재가 떠나니 기업도 자꾸 떠날 궁리를 한다. 차 전 총장은 LG전자 창원 공장의 연구소 기능이 사라질 뻔했던 일을 떠올렸다.

"신입 연구원 채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구소 기능을 서울 마곡지구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릅니다. 남기로 결정됐다고 하길래 감사 인사를 하러 공장까지 찾아갔어요."

당시 경영진은 그에게 '부산대 믿고 안 가기로 했다. 인재를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활한 인재 수급'이 곧 안정적인 경영의 바탕이다. 인재가 없다면 지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기업 하나가 없어지면 일자리는 더 줄고, 그러면 인재 풀 역시 한 번 더 감소한다. 인구가 줄어드니 인프라 개선은 꿈도 꿀 수 없어진다. 악순환의 악순환인 것이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이 5월 2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양오봉 전북대 총장이 5월 2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그렇다 보니 국가 경제 발전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양 총장은 제조업체 회장, 대표들에게 비슷비슷한 고민을 듣는다고 했다. '지역에는 인재가 없고, 서울에 플랜트를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한국에서 계속해야 하나, 외국에 새로운 공장을 지을까' 하는 그런 얘기들이다.


"석유화학 등 국가 경제를 떠받치던 산업들이 새로운 공정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현시점에 지역 공동화 현상 발생은 더욱 심각합니다." 양 총장의 진단이다.

공공기관·공기업 자구책 골몰



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이 충북 음성 내 충북혁신도시에 위치한 KISTEP에서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KISTEP 제공

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이 충북 음성 내 충북혁신도시에 위치한 KISTEP에서 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KISTEP 제공


지역을 지켜야 하는 공공기관·공기업들은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넓은 인력 풀에서 우수한 인재를 끌어와야 한다는 사명감도 느낀다. 이들의 경쟁력은 곧 국가적 발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취임 두 달째인 오태석 KISTEP 원장은 기관의 브랜드 가치 끌어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석·박사를 마친 자식이 충북 음성에 있는 KISTEP에 취직하겠다고 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묻고선 말했다. "굳이"라는 말이 부모 입에서 나오지 않겠냐고. 기관의 위치가 청년 인재의 선택을 방해하지 않게 하려면 브랜드 가치 말고 다른 수는 없다고 봤다.

"과학기술 싱크탱크인 기관 특징 덕에 지금은 경쟁률이 10대 1 정도로 유지되긴 하죠. 하지만 고민은 됩니다. 석·박사 학위 같은 기본적 기준 외에 사명감·책임감 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어떻게 꾸준히 채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4일 기자가 찾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19년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 사이에 있는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해 왔다. 음성=오지혜 기자

4일 기자가 찾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19년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 사이에 있는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해 왔다. 음성=오지혜 기자


그럼에도 공공기관 자체적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부분도 많다. 예컨대 해당 지역 출신만 압도적으로 늘어 조직의 다양성을 저해하지 않게 인사를 운용하는 것도 난제다. 현재 이전 공공기관은 지역 인재를 채용 인원의 30% 이상 의무 채용해야 하거나,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역 인재는 최종 졸업지가 기관과 동일한 지역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조직의 역동성을 위해서 다양성 유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구성원이 한 지역으로 편중되면 조직 문화에도 좋지 않죠.


자체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한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설명했다. 지역 인재의 범위를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크게 나눠 비수도권 전체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좋은 교육으로, 성장하는 미래를 그려 준다면



차정인(왼쪽 세 번째) 전 부산대 총장이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을 위한 지역 거점국립대학 전현직 총장·교육감 기자회견'에서 참석했다. 뉴시스

차정인(왼쪽 세 번째) 전 부산대 총장이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을 위한 지역 거점국립대학 전현직 총장·교육감 기자회견'에서 참석했다. 뉴시스


"지역 대학에서도 훌륭한 미래를 펼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청년들이 선택을 하겠죠.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하는 대학들에 투자를 하는 게 결국 지역을 살리는 거예요. 지역 인재가 없으면 지역 기업이 죽고 그러면 서울도 죽고 말겠죠."

최근 첨단방산학과 설립을 이뤄낸 양 총장은 주먹을 쥐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최근 논의와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체계에서 지방 대학 홀로 보이지 않는 벽을 뚫기는 쉽지 않다. 차 전 총장은 "석학을 모셔야 젊은 인재도 모일 텐데, 지금의 경직된 국립대 보수 체계로는 어렵다"며 대학별 총액인건비제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한정된 예산으로 국립대 모든 학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별 특성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내 민심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총장 직선제 아래에서 어떤 총장도 섣불리 집중 육성할 학과를 선택할 수 없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2023년 7월 20일 지정된 7개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와 5개의 신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3년 7월 20일 지정된 7개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와 5개의 신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교육과 산업의 연결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오 원장은 지역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첨단산업단지의 한계를 짚었다.

"미래 산업 한다면서 연구소, 대학도 없는 곳에 첨단전략산업 단지 만들고 세금만 조금 깎아 준다죠. 그럼 누가 가겠어요? 혁신의 씨앗을 이식해야 해요. 먼저 연구진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꾸린 뒤 불러와야죠. 공고한 연구 집단이 생기면 스타트업 등 기업들도 옮겨 올 거예요. 그게 지역의 '킬링 콘텐츠(독보적 콘텐츠)'가 되겠죠."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상> 청년, 지방과 헤어질 결심
    1. • ‘최고의 직장’을 떠날 결심 “너 여기서 계속 살 거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18210001385)
    2. • "떠난다면, 보내 줄 수밖에"... 청년도, 기업도, 경쟁력도 놓치는 지역의 속앓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000180002963)
  2. ② <중> 오답 속 청년을 부를 해법
    1. • 10년째 주말이면 고요한 혁신도시... "수도권 쏠림에 질식사할 지경"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14540005674)
    2. • '해수부 부산 이전' 포문 연 이재명 정부 균형발전, 성공 열쇠 3가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416270005449)
  3. ③ <하> 다시, 함께 성장하는 그곳
    1. • "여성을 붙잡아라"... 청년 돌아온 일본 지자체의 '여성 친화 마을 만들기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5490005581)
    2. • 청년 다시 모이는 곳 '세 가지' 공통점 ①외지 청년 ②개방적 문화 ③초연결 생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1500001960)
    3. • "지역 균형발전? 당사자성 충만한 주체 발굴해 지원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7540005296)


부산·음성·울산=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