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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요인들 침실 공격한 드론, 수개월 전부터 근처에 숨어있었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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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요인들 침실 공격한 드론, 수개월 전부터 근처에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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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모사드, 영화 같은 작전
지난 13일 이스라엘 공습을 당한 이란의 한 공동 주택. 이란 요인의 주택으로 추정되는 이 주택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수 개월 전부터 이란에 밀반입한 정밀 타격 드론 등의 무기로 공격당한 듯 벽에 구멍이 나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3일 이스라엘 공습을 당한 이란의 한 공동 주택. 이란 요인의 주택으로 추정되는 이 주택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수 개월 전부터 이란에 밀반입한 정밀 타격 드론 등의 무기로 공격당한 듯 벽에 구멍이 나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3일 이란 군 수뇌부와 핵물리학자 등 요인을 암살하고 주요 핵·미사일 시설을 파괴한 이스라엘의 ‘일어서는 사자’ 작전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이란은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과 부사령관을 비롯해 저명 핵물리학자 등 주요 핵 개발 인력 수십 명을 잃었다. 전쟁 지휘부와 핵심 인력을 단번에 제거한 이 같은 ‘참수 작전’이 성공한 이유로는 해외 작전에 특화된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가 이란에서 오랜 기간 운영한 대규모 간첩단의 사보타주(파괴) 공작이 지목된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이스라엘 모사드는 이번 작전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드론 부품과 폭탄 등을 이란 영토로 밀반입했다고 알려졌다. 요인 암살, 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한 공격 드론 작전을 수행할 ‘비밀 기지’를 수도 테헤란 및 이란 전역의 핵·미사일 시설 인근에 설치해두고, 몰래 들여온 부품을 조립해 공격용 드론 부대를 구축했다. 지난 13일 새벽 작전이 개시되자 이란 전역에선 곳곳에 숨어 있던 모사드의 공격 드론이 일제히 솟아 올랐다. 이 드론은 군 수뇌부 등의 자택으로 직행해 폭발함으로써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고층 아파트 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표적이 있는 침실에서 폭발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 고위 보안 관계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사망자 다수는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모사드의 정보망을 통해 이란 고위층의 침실 위치까지 파악해 두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15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사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한 유류 저장고에서 화염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는 이란의 주요 시설의 위치를 사전에 정말 파악, 내부에서 폭탄 유도 정치를 설치하는 공작을 장기간 준비했다./EPA 연합뉴스

15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사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한 유류 저장고에서 화염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는 이란의 주요 시설의 위치를 사전에 정말 파악, 내부에서 폭탄 유도 정치를 설치하는 공작을 장기간 준비했다./EPA 연합뉴스


요인 암살에 성공한 후 현장에 미리 잠입해 있던 모사드 특공대가 이란 전역의 주요 핵·미사일 기지로 전개하면서 작전이 확대됐다고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은 WP에 밝혔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이 작전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과감하고 정교한 계획과 전술적 기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과 이란이 최근 핵 협상을 하는 동안에도 모사드 비밀 특공대가 테헤란 등지에서 잠복을 하며 요인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핵·미사일 시설 등의 감시망을 뚫고 표적과 관련한 정보를 최신화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작전 개시와 동시에 이란 현지의 목표물이 상당 부분 제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이란 현지에선 대규모 모사드 특공대와 첩보원이 장기간 활동해 왔다고 알려졌다. 할리 다그레스 워싱턴연구소 연구원은 CNN에 “모사드는 벌써 몇 년째 이란을 놀이터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WP는 “이란이 이스라엘로부터 군 요인과 과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 무능은 놀랍다”고 했다. 모사드 특공대는 기존에 밀반입한 정밀 유도 무기를 이란의 지대공(地對空) 미사일 기지 등에 설치하는 한편 자체 차량 공격, 사이버 공격까지 병행하며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밀반입된 드론도 방공 시스템 파괴에 활용됐다. 이스라엘 현지 매체들은 14일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용 드론이 게임을 하듯 이란의 방공 시스템에 다가가 파괴하는 영상을 속속 공개하고 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군 수뇌부와 핵물리학자들의 얼굴이 걸린 현수막 앞을 지나가고 있는 이란 여성들. 이들 요인의 동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군 수뇌부와 핵물리학자들의 얼굴이 걸린 현수막 앞을 지나가고 있는 이란 여성들. 이들 요인의 동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 연합뉴스


작전 시행 초기에 전쟁 지휘부가 암살당하고 방어 체계가 마비된 이란은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파상 공격을 전개한 이스라엘 공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스라엘은 F-35 스텔스 전투기를 포함, 전투기 200여 대를 투입해 이란 전역의 150곳이 넘는 목표물에 330발 이상 정밀 유도 폭탄과 미사일을 투하했다. 이미 모사드 특공대가 현장의 지대공 미사일을 무력화하고, 주요 목표물 위치를 파악해둔 상태였기에 정확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며 “이러한 공격은 놀라운 정확도를 보여준다”고 했다. 이 매체는 “이스라엘군은 아마 10년가량 이 전장(이란 현지)을 치밀하게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정보 수준을 고려하면, 모사드가 이란 정계와 군부 핵심에 대규모 간첩단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전사 특수임무여단(일명 참수작전부대)이 도입중인 이스라엘제 자폭 드론 '로템-L'./이스라엘 IAI사

특전사 특수임무여단(일명 참수작전부대)이 도입중인 이스라엘제 자폭 드론 '로템-L'./이스라엘 IAI사


이번 ‘일어서는 사자’ 작전은 이스라엘이 그간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 세력인 하마스·헤즈볼라의 수뇌부를 제거했던 ‘참수 작전’과 패턴이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 단지를 정밀 폭격해 하마스 수장 무함마드 신와르를 제거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엔 무함마드 신와르의 형이자 당시 하마스의 수장이었던 야히야 신와르를 암살했다. 이스라엘군은 이후 무장 드론이 신와르가 있는 아파트의 내부로 따라가 기진맥진한 그를 제거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침실까지 드론이 치고 들어간 이번 이란 작전을 연상케 한다. 모두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데 따른 보복 조치였다.

모사드, 드론 조준 영상 공개 -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13일 공개한 영상에서 이스라엘군 드론이 카메라로 이란군 트럭을 정밀 조준하는 장면. /이스라엘 모사드

모사드, 드론 조준 영상 공개 -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13일 공개한 영상에서 이스라엘군 드론이 카메라로 이란군 트럭을 정밀 조준하는 장면. /이스라엘 모사드


지난해 9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앞두고서는 지도부에 대한 ‘핀셋 타격’으로 최고 사령관 등 핵심 지휘관 대부분을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헤즈볼라가 보안용으로 반입해 사용하던 무선 호출기·무전기에 소형 폭탄을 미리 설치해 폭발시키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전직 이스라엘 안보 보좌관을 지낸 야아코브 아미드로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참수 작전’에 대해 “의사 결정 체계를 무력화시키고 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며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상대로 이미 이를 배웠다”고 했다.

☞이스라엘 작전명 ‘일어서는 사자’

구약성서 민수기 23장 24절을 차용한 것이다. “백성이 암사자와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처럼 일어서 움켜진 것을 먹고 피를 마시기까지 눕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절이다. 사자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한 ‘열두 지파’ 중 왕국을 건설한 유다 지파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유다 지파는 오늘날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유대인 민족의 선조다. 구약성서 속 인물 야곱이 넷째 아들이자 유다 지파의 시조인 유다를 축복하며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창세기 49장 9절)라고 한 데서 사자가 유다 지파와 연결돼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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