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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처벌법, 2년前 위헌 판결… 표현의 자유 논란 커질 듯

조선일보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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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처벌법, 2년前 위헌 판결… 표현의 자유 논란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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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대북전단 엄정 처벌 지시
민간단체, 자제 요청에도 뿌려
처벌 메시지로 대북 화해 제스처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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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우리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모든 관련 부처에 예방과 사후 처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날 새벽 한 민간 단체가 강화도에서 북한으로 전단을 살포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엄중 조치를 예고한 것이다. 정부가 선제적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에 이어, 대북 전단 처벌 방침을 밝히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하지만 탈북자 단체들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이날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 시 입장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한 데 대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살포를 진행한 민간 단체와 개인에 대해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16일 통일부 주관으로 유관 부처 회의를 열어 종합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를 두고 위헌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2020년 북한 김여정이 “전단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한 뒤 당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시행했는데, 이는 과도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는 이유로 2023년 9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이 나왔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항공안전관리법 등 다른 법으로 대북 전단을 ‘우회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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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처벌법, 2년前 위헌 판결… 표현의 자유 논란 커질 듯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연달아 지시한 것은 임기 초부터 본격적인 대북 유화 제스처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청한 데 이어, 11일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14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엄정 처벌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도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해 항공안전관리법·재난안전법·고압가스안전관리법 등 법령 위반 여부에 따라 처벌을 포함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도 대북 전단·확성기를 남북 교류 협력 분위기 조성의 ‘장애물’로 보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김씨 일가 3대 세습, 북한 내 인권유린 등 내용을 담은 대북 전단이 북한 정권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도발의 빌미를 제공하고, 접경 지역 주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대북 전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효과적인 정보 유입 수단으로 역할을 해왔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도 허용돼야 한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식이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을 때 미국·영국·유엔 등 국제사회가 비판과 우려를 쏟아내고, 헌재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제한이 매우 중대해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논란을 감수하고라도 엄정 대응에 나설 방침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저희가 지금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남북 간에 과도한 긴장과 대결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그것을 시행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안보 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상호적으로 서로 호응할 수 있는 이슈가 있으면 계속 진행해 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확성기 중단과 대북 전단 금지 외에 추가적인 조치가 이어질 것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파기를 선언했던 9·19 군사 합의의 복원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되는 조치들은 안보와의 관계를 잘 교량하면서 점진적으로 한 땀 한 땀 진행해 나갈 것을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9·19 군사 합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대통령은 꾸준하게 북한을 겨냥한 평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5주년 메시지로 “이재명 정부는 소모적 적대 행위를 멈추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며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부터 신속히 복구하며 위기 관리 체계를 복원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어 “‘한반도 리스크’를 ‘한반도 프리미엄’으로 바꾸고, 남북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여권에서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미·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대통령의 기조에 박자를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에선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이 과거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여권 진영의 기조와는 다소 다르다는 말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체제 구축 자체에 무게를 뒀지만, 이재명 정부는 평화 체제와 남북 교류를 통해 경제와 군사 위기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실용적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는 경제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평화에 주안점을 둔 것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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