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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로 묻는 안부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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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로 묻는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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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생식당에서 판매하는 1000원의 아침밥 / 중앙대

중앙대 학생식당에서 판매하는 1000원의 아침밥 / 중앙대


“식사하셨어요?” “밥은 먹었어?”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이런 인사말이 오간다.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버겁던 과거가 남긴 꼬리뼈의 흔적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식사하셨어요?”는 상대방 안부를 묻는 것이다.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밥맛 떨어지는 일은 없는지, 먹고살기가 괴롭지는 않은지.

‘먹고살다’는 한 단어다. 국어사전을 펼치지 않아도 먹는 일과 사는 일은 불가분 관계라는 뜻이다. 밥을 잘 먹는 일이 잘 사는 일의 기본. 먹을거리가 차고 넘치는데 굶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함부로 넘겨짚어 버리면 영원히 안부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그리고 물가 상승은 먹고사는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예요?” 지난 9일 비상 경제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편의점 기준으로 신라면과 진라면이 1000원이다. 2000원이 넘는 라면은 전체의 1% 미만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물가가 얼마나 심각한지 강조하기 위해 라면을 예로 들었을 것이다.

2010년부터 점심 백반이 1000원인 광주광역시 대인동 '해뜨는 식당' /인터넷 캡처

2010년부터 점심 백반이 1000원인 광주광역시 대인동 '해뜨는 식당' /인터넷 캡처


광주광역시 대인동 ‘해뜨는식당’ 김윤경씨는 어머니(김선자)에게서 1000원 밥집을 물려받았다. 요즘도 날마다 점심 식사로 약 120~130명에게 안부를 묻는다. 밥, 시래기 된장국, 반찬 3종으로 구성한 백반이 과자 한 봉지 값도 안 되는 1000원. 김씨는 부자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보험 설계사로 투 잡을 뛰며 이 식당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왜 1000원일까. 어머니가 처음 식당을 만든 2010년에 정한 이 밥값은 의미심장하다. 공짜라고 하면 오는 손님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니 “떳떳하게 먹으라고” “자존심을 지키라고”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해뜨는식당에서 1000원은 백반 가격이 아니라 “식사하셨어요?” 같은 안부다. 식당 한쪽 벽엔 후원자 명단이 있다. 매달 급여에서 1000원씩 기부하는 공무원들, 쌀을 보내주는 분들도 있다.

강원 원주, 충북 제천, 경남 함안 등지에도 1000원 밥집이 있다.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지탱되는 가격일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해뜨는식당’ 김윤경씨는 말했다. “경제가 안 좋고 다들 살기 힘들어서 후원도 줄었어요. 그런데 손님의 80%는 날마다 오는 분입니다. 힘들어도 문을 닫을 순 없어요. 열심히 보험 팔아서 메워야죠, 하하.” 오늘도 밥 한 끼로 안부를 묻는다.

김윤경씨가 운영하는 '해뜨는 식당' 벽에 붙은 후원 명단(왼쪽)과 신문 기사. “처음 물려받았을 땐 딱 3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가게를 계속하게 됐죠. 전보다 더 많은 분이 찾아와 한 끼 드시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 열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김윤경씨가 운영하는 '해뜨는 식당' 벽에 붙은 후원 명단(왼쪽)과 신문 기사. “처음 물려받았을 땐 딱 3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가게를 계속하게 됐죠. 전보다 더 많은 분이 찾아와 한 끼 드시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 열어 놓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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