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공공의대·공공의료사관학교 등 공약
위헌소지·실효성 등 지적…근로·정주 여건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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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단체도 의사들도 비수도권 근무, 공공·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하다는 데엔 공감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 서예원 기자 |
국가의 기본 법칙인 헌법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국가가 병의 예방, 치료로 국민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분명히 밝혔지만 현실은 다르다. 응급환자가 수용해줄 상급종합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고 있다. 지역에서 서울까지 수술 받으러 오는 원정 진료도 이어지고 있다. 공공병원은 매우 적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사립 병원과 의사들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필수의료 과는 의사가 부족한 반면 피부과, 성형외과 등 고수익 분야에 의사들이 몰리고 있다. 의정갈등에 의료공백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더팩트>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헌법이 보장한 국민 건강권이 위기에 처한 현실과 정부 역할 부재, 제안되는 해법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 서울 3.16명, 세종 1.36명. 현재 환자를 진료하는 소아외과 전문의 수는 전국 통틀어 40여 명. 의과대학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단체도 의사들도 비수도권 근무, 공공·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하다는 데엔 공감한다.
문제는 '어떻게 늘릴 것인가'다. 의사 인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해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지역 근무 또는 공공·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할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거나, 해당 분야에서 장기간 일하도록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 이재명 정부, '집중 양성'에 초점…공공의대 등 공약
이재명 대통령 21대 대선 공약은 '집중 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비수도권 지역에 공공보건의료대학(공공의대)을 신설하거나 '공공의료 사관학교'를 만드는 방식이다. 시장 원리에 맡겨서는 충분히 배출되지 않는 공공·필수의료 인력을 정부가 개입해 공급한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보건의료 공약이자 지역 공약으로 인천에 '공공의대 및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전남에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의료 개선', 전북에 '공공의대 신설 추진' 등을 약속했다. 경북 지역에는 '의과대학 설립 검토 및 상급종합병원 유치 지원'을, 울산에는 '어린이 치료센터를 특화한 울산의료원 설립'을 내걸었다.
공공의료사관학교는 국가가 설립·운영하는 사관학교 형태의 의대로,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 목표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처럼 입학부터 졸업까지 국가가 지원한다. 대신 졸업 후 일정 기간 공공의료기관 의사 등으로 의무 복무해야 한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 전형으로 기존 의대에 입학하면 졸업 후 10년 간 의무적으로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의료 취약 지역에 자리 잡고 근무할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의무복무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장학금을 반환해야 하고 의사면허도 취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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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는 공공의대 등을 통한 의사 확충은 △의학교육의 질 저하 △막대한 예산 투입 대비 효과 불확실 △10년 의무복무 관련 위헌 가능성 면에서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고 반대한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지난 4일 정례브리핑에서 "공공의대를 신설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리고 신설한다 하더라도 의학 교육을 위해 필요한 부속병원을 유지하려면 부담이 굉장히 크다"며 "부속병원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아 결국 학교가 없어진 서남대 의대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기존 정원을 활용해 지역·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단기적 해법이 필요하다"며 "향후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결정된 의대 정원 중 일부를 공공의대에 배정하는 등 여러 가지 안을 놓고 논의한다면 지역의료 해결을 위한 좋은 안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의협 정책연구원)은 2020년 '일본 지역정원제도(지역의사제와 유사)의 개요 및 현황'에서 "지역정원 의사들의 졸업 후 근무처는 대부분 대학병원 또는 중심병원이었으며 의사부족지역에서 근무하는 비율 (24.1%)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의무 이행 기간 종료 후 얼마나 많은 의사가 취약지역에 남을 지는 미지수"라고 언급했다.
◆ 의료 불균형, 지방소멸 악순환…근로·정주 여건 개선해야
필수의료를 비롯한 의료 공백과 의료 인프라 부실은 지방소멸 위기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한다. 인구감소가 지역의료 수요 감소와 민간 의료기관 폐업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 의료체계 구축과 더불어 의사들이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지속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과제로 꼽힌다.
필수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높은 업무 강도와 소송 위험에 비해 보상이 적어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보건의료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기과' 안과 전문의 연봉은 '필수과' 소아청소년과의 3배에 달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연봉은 1억3473만9397원, 외과 2억2369만3918원, 내과 2억2855만4754원, 산부인과 2억3734만9347원이었다. 인기과로 분류되는 피·안·성·정(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은 △성형외과 2억2258만4747원 △피부과 2억8474만2860원 △정형외과 3억7554만3758원 △안과 3억8917만6129원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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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높은 업무 강도와 소송 위험에 비해 보상이 적어서다. 사진은 2025년 을사년 첫 아기인 니케(태명)가 1일 경기 고양 일산차병원에서 힘찬 울음을 터트리며 탄생을 알리는 모습. /일산=임영무 기자 |
단기적 해법으로는 기존 인력이 적정하게 배치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지역 내 진료 체계를 재편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과 병원을 개업했던 전문의들이 코로나19 이후 운영이 쉽지 않아 다른 직종으로 이전한 경우가 많다"며 "기존 의사 인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말했다. 강 교수는 "이를테면 부산에 소아과가 있는 대학병원이 5개인데, 밤에 환자가 생기면 갈 데가 없다"며 "한 군데로 센터화하면 '24시간 근무'가 가능하면서도 의사들의 근무 여건도 나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공의 선발 과정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준 인하대병원 예방관리센터장은 "전공의 모집 정원이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수보다 많다"며 "'기다리면 특정 과를 갈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고 필수과 기피 현상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사실상 전공의 선발을 대한병원협회에 맡겨둔 상태라 수익성·운영 효율 측면에서 대형병원에 유리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며 "정부가 개입해 필수과 정원은 유지하고 나머지 과는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협 정책연구원은 2023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에서 "필수의료에 대한 인력 충원과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며 "장시간 근로는 특정과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대부분 진료과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당직 및 근무시간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3월부터 8개 필수의료 과목(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 의학과·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과·신경외과) 전공의 소아·산부인과 분야 전임의를 대상으로 월 100만원의 수련보조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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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를 비롯한 의료 공백과 의료 인프라 부실은 지방소멸 위기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새롬 기자 |
의료인력이 인구 감소 지역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의협 정책연구원의 '2020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지방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최대 3개 답변)은 자녀 교육문제(58.3%),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는 어려움(52.6%), 친지나 친구관계 등 개인적 사회관계 단절 문제(42.4%) 순이었다. 경제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동반 정주가 가능한 환경 마련, 교육·문화 인프라 개선, 지역 의료기관 역량 강화가 함께 가야한다는 의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4년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한 건강관리서비스 개선 방안 연구'에서 "의사의 지역 근무 결정에는 출신지역이나 가치관 등 개인적 요인 뿐 아니라 자녀 교육환경이나 공공시설 여건 등 가족·지역사회 요인, 급여 등 경제적 요인이 모두 반영된다"며 "의료인이 지역 근무로 겪는 위험과 불편함을 해소해 지역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의무와 봉사가 아닌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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