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중단을 넘어 영구히
사법 리스크를 끝내려는
‘재판 없애기’ 시도가
가시화되고 있으나
‘5년 뒤 문제’에 대해
李 대통령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이 더 불안하다
사법 리스크를 끝내려는
‘재판 없애기’ 시도가
가시화되고 있으나
‘5년 뒤 문제’에 대해
李 대통령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이 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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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악수하고 있다.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를 영구 제거하려는 여권 내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조희대 대법원의 지난 5월 선고가 마지막 판결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남강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G7 정상 회의 참석은 환영할 일이었으나, 발표 과정에서 드러난 ‘사법 무시’ 본능은 몹시 당혹스러웠다. G7 캐나다 회의가 당초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 환송심 공판 날짜와 겹쳤기 때문이었다. G7에 가면 이 대통령은 재판 출석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대통령실은 재판 일정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오는 24~25일 나토 정상 회의에 참석할지 여부도 곧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잡혀 있던 대장동·백현동·위례 공판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이 발표를 한 지난 7일은 선거법 사건 재판부가 ‘기일 연기’를 밝히기 이틀 전 시점이었다. 당연히 G7과 겹치는 선거법 공판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마치 재판 일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응했다. 예의상 빈말이라도 ‘법원 허가를 얻어’ G7에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재판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비쳤다. 입법권에 이어 행정 권력을 장악하고 사법권까지 쥐고 흔든다는 이재명 정권의 위세를 실감케 했다.
재판은 안중에 없는 이 대통령 앞에 결국 법원이 손들고 말았다. “G7 참석” 발표 후 선거법 재판부와 대장동·백현동·위례 재판부가 잇따라 공판 일정을 무기 연기했다. 외교 일정에 따른 재판 불출석을 법원이 사후 승인해 준 모양새였다. 권력에 무릎 꿇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렇더라도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재판부가 안 했다면 민주당이 중단시켰을 것이다. 민주당은 법으로 이 대통령의 사법 일정을 올스톱시키는 ‘재판 중지법’ 카드를 흔들며 법원을 압박해 왔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 재판 중단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 대통령은 재판 중단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절대다수란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선 출구 조사에서 ’재판이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이 64%로, ‘중단해야 한다’는 26%를 압도했다. 법조계에서도 헌법 제84조의 ‘대통령 불(不)소추 특권’엔 진행 중인 재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게다가 헌법 68조 2항은 ‘판결에 의한 대통령 당선자의 자격 상실’을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돼도 재판은 진행된다는 것을 헌법이 전제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이자 안보를 책임지는 군 통수권자이고, 검찰·경찰을 통할하는 사법 행정의 최종 책임자다. 24시간 국정을 총괄하는 현직 대통령을 수시로 법정에 세운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국익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재임 중엔 마음껏 국정을 펼칠 수 있도록 사법 족쇄를 유예해 준 재판부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다. 재판부는 ‘추후 기일 지정’이란 표현을 썼다. 공판 중단이 대통령 재임 중의 한시 조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5년 뒤 임기 종료와 동시에 재판이 재개되고, 이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야 한다. 그때까지 이 대통령의 혐의 11개, 재판 5개는 ‘동결’될 뿐이다. 모든 공판 기록과 증언·증거물을 지금 상태 그대로 보전해 5년 뒤 재판정에서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이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은 여권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5년간 재판 중단에 그치지 않고 영구히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려는 ‘재판 없애기’ 시도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법을 고쳐 이 대통령의 유죄가 확정된 허위 사실 공표죄를 면소(免訴)로 뒤집고, 대법원 판사를 증원해 자기편을 다수로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법원 유죄를 받아도 헌법 재판을 통해 뒤집을 수 있게 법을 고친다거나, 이 대통령이 임명할 검찰 수뇌부가 이 대통령 사건을 ‘공소 취소’토록 한다는 아이디어까지 나온다. 설마 싶지만 민주당을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민주당은 정파적 목적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집단이다. 야당 시절에도 막무가내 방탄 입법, 검사·판사 협박, 반복적 탄핵 같은 비이성적 폭주를 거듭했던 민주당이다. 이제 집권당이 되어 행정 권력에다 사법 인사권까지 장악했으니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 대통령 취임 닷새 뒤 박지원 의원은 “(검찰이) 정치적 기소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공개 촉구했다. 당 안팎에선 사법 리스크의 ‘영구 제거’를 주장하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온다. 과연 5년 뒤 이 대통령 재판의 정상적 재개가 가능할지, 벌써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우려를 불식할 책임은 이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퇴임 후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겠다”는 당연한 약속을 왜 못 하나. 5년 뒤 재판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재판 중단에 반대하는 다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금껏 단 한 마디 언급도 한 적이 없다. 그 침묵이 더 불안하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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