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궁 김지훈 / 사진=빅픽처이앤티 |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어느덧 44세, 데뷔 23년 차가 된 배우 김지훈에게는 '중년 차은우'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진다는 말에 "나이가 들면서 멋있어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운동 꾸준히 하고 건강하게 먹고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하는 저의 삶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다"며 웃었다.
2002년 KBS2 드라마 '러빙유'로 데뷔해 최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귀궁'(극본 윤수정·연출 윤성식)에 이르기까지, 김지훈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귀궁'에서는 극 중 강성한 나라를 꿈꾸는 개혁 군주 이정 역으로 열연, 백성을 위한 올바른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 강철이와 친구로서의 모습과 중전을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 등 이정의 다채로운 면모뿐만 아니라 액션까지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열연에 힘입어 '귀궁'은 첫 회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시청률 9.2%를 기록했고, 최종회인 16회는 11%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또한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지훈은 "요즘 시청률 가뭄의 시대인데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밖에 다니면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주는데, 많이 안 보는 작품을 하면 ''왔다! 장보리' 잘 봤어요'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귀궁' 잘 봤어요' 얘기하셔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왔다! 장보리'는 지난주에도 한 번 듣긴 했다. 시청자들이 계속 생기나 보다"라며 웃었다.
이번 작품에서 김지훈은 20년 연기 내공을 쏟아부었다고 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진짜 힘들게 촬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보통의 드라마와는 달리 왕으로서의 감정은 나라의 안위가 걸려 있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지 않나. 그걸 자꾸 정적들이 방해하고 견제하고 그러면서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가고 당장 나와 내 자식과 가족의 목숨을 노리면서 왕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거다. 늘 국가의 안위와 내 가족과 내 목숨을 걱정하는 게 베이스가 된 상태에서 모든 장면들을 표현해야 했다. 마지막에 팔척귀의 감정은 온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한 원한과 분노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컸다. 그 모든 걸 제가 온전히 느껴야만 왕으로서의 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단 한 신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걸 쏟아부은 만큼 아쉽기도 하다"라며 "지상파는 방영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날아간 장면들이 많다. 현장에서 애썼던 것들이 안 나오면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되지 않나. 그런 부분이 속상했다. 사람들이 중전과의 관계도 좋게 봐주시는데 절반 정도 날아갔다. 그런 서사들이 다 살았으면 정말 멋진 로맨티스트 이정으로서 남을 수 있었는데 그런 아쉬움이 들더라"라고 소회를 전했다.
김지훈은 자신과 이정의 공통점으로 "저의 개인적인 어떤 생각과 가치관이 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MBTI가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원칙주의적이고 귀신을 인정하지 않다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지 않나. 그런 부분들이 저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며 "사고가 경직돼 있고 완고하기만 한 왕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처하는 모습들에서 사고의 유연함을 지닌 왕이었던 것 같다"고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이정이 '섹시하다', '잘생겼다'는 반응에 대해 "왕이랑 섹시는 잘 매칭이 안 되는데 '왕이 왜 이렇게 섹시하냐'는 얘기가 그래서 기분 좋게 느껴지더라"라며 웃었다.
왕 이정을 표현하기 위해 참고한 것이 있는지 묻자 "제가 여태까지 살면서 접한 경험들, 간접적으로 겪은 것들을 토대로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나이 먹으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나. 나라가 운영되는 상황에서 불합리하게 희생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치적,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는 경험들이 지금 왕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왕 이정의 다채로운 모습을 연기할 수 있도록 그려준 윤수정 작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김지훈은 "전형적인 왕의 모습을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대본이 나올수록 다양한 모습을 갖춘 왕이더라. 작가님한테 감사드린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를 만나는 게 연기자로서는 행운이다. 그런 면면을 잘 만들어 주셔서 연기하는 재미도 있었고 왕으로서의 모습과 로맨티스트로서의 모습, 코믹한 모습, 액션, 빙의된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한번에 보여드릴 수 있어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윤성식 감독과 세 번째 작품을 함께한 소감도 밝혔다. 김지훈은 "감독님과 호흡이 정말 좋았고 일단 현장에서 배려를 많이 해 주신다. 극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굉장히 탁월하시다. 연기자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주시고 또 연출로서 고집을 부릴 때는 부리면서 그런 것들이 원만하게 조율돼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던 것 같다. 현장에서 배우들도 힘들고 스태프들도 힘들고 특히 감독님이 가장 힘드셨을 거다. 여러 면에서 힘드셨을 텐데 짜증 한 번 내지 않으시고 큰 역할을 하셨다. 현장은 힘들지만 즐거웠다"고 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강철이 역의 육성재와 케미도 눈길을 끌었다. 김지훈은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다 보면 선배 입장에서 '이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처음에 쓱 얘기를 꺼내봤을 때 상대방의 입장이랄까, 리액션이 갈리기 마련이다. 그걸 달갑게 적극적으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며 "그런데 성재 씨 같은 경우는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환영한다. 자기가 준비한 연기가 있어서 현장에서 얘기를 한다고 달라지기 쉬운 일이 아닌데 얘기해 주는 입장에서도 더 욕심이 나더라. 얘기를 해 주면 그걸 금방 받아들여서 더 좋게 표현해내는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강철이와 여리, 왕의 케미가 더 살지 않았나"라고 밝혔다.
팔척귀로 분한 배우 서도영과는 1981년생 동갑내기다. 김지훈은 팔척귀로 분장한 서도영을 보며 "되게 짠했다. 아침 8시 첫 신이면 새벽 5시에 와야 했다. 분장을 하는데 한 3시간 걸리는데 대기 시간이 기니까 대기실에서 힘들게 앉아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진짜 힘들겠구나 싶었다. 나이가 같기도 하고 뭔가 정서적인 유대감이 생겼던 것 같다. 연민이 느껴지니까 더 응원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팔척귀의 작중 행적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따지면 삼도천으로 곱게 가는 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하고 공감하고 연민하는 것이 드라마의 메시지이자 주제다. '왜 팔척귀는 왕한테 그러냐', '오랑캐를 죽여야 하지 않냐'는 분들도 계신데 왕이라는 자리는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지 않나. 백성은 자식인데 자식을 지키는 것이 왕의 의무다. 그런 점에서 팔척귀의 배신감이 당연히 더 클 수밖에 없다. 오랑캐가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왕의 자리가 가지는 책임과 의무, 무게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지훈은 "저는 판타지와 SF를 좋아해서 영화도 많이 찾아본다. 옛날 판타지들 있지 않나. '퇴마록'이나 '드래곤 라자'도 재밌게 봤다. 판타지물을 나중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귀궁'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지 묻자 "지금 제 나이대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기자로서 전반전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후반전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연기자로서 전반전의 대부분은 그냥 열심히 달리기만 한 것 같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까 엉뚱한 데 가 있더라. 그걸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돌려서 궤도를 수정하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귀궁'은) 전반전의 마지막쯤에 제가 원하는 궤도에 안착한 느낌"이라며 "예전에 주말드라마를 할 때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일을 안 할 수가 없으니까 해야 했던 상황도 있었다. '귀궁' 같은 작품에서는 저를 불러주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여러 가지 시간과 고통을 겪으면서 조금씩 궤도를 수정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의 연기 인생 후반전은 어떨까. 그는 "저는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그때그때 선택에 집중하는 편이다. 저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작품,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 작품으로는 "저는 가리지 않는다. 제가 봤을 때 재밌으면 된다. 시놉시스를 보면 '굳이 이걸 왜 드라마로 만들지?' 생각이 드는 것도 있는 반면, '이건 사람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하는 것도 있다.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훈은 현재 tvN '얄미운 사랑'과 할리우드 진출작인 아마존 프라임 '버터플라이'를 비롯해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 티빙 '친애하는 X' 등의 차기작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는 "아직도 갈증이 큰 것 같다. 연기자로서 일하는 걸 재밌어 하는 게 첫 번째고, 내가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에 연기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넷플릭스 예능 '크라임씬 제로'를 통해 8년 만에 '크라임씬' 시리즈에 복귀한다. 이에 대해 김지훈은 "기대해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첫 회를 녹화할 때 다 많이 해본 사람들 아닌가. 우리들의 리액션이 그냥 찐으로 터졌다. 극 중에서 연기를 하는데 반전들이 밝혀지는데 그런 상황들이 너무 놀라웠다"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안 부르고 이제야 나를 부르다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함께하게 돼서 좋다. 재밌겠다는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와 함께 '귀궁'으로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면 어떨 것 같은지 묻자 "저는 크게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진 않는다. 그게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라며 "저는 (연기상) 전혀 기대 안 한다. '주면 고맙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살게 되더라.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ent@sto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