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백신 강국을 넘어 글로벌 보건 리더국으로
① 글로벌보건은 자선 아닌 전략투자
② G7 등 외교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① 글로벌보건은 자선 아닌 전략투자
② G7 등 외교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③ 보건은 곧 국가 안보 투자와 직결
오늘날 세계는 기후변화, 무력 분쟁, 개발원조 축소,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 약화 등 복합적인 위기(polycrisis)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이 꾸준히 보여주는 글로벌 보건 분야에 대한 지원은 국제사회에 신뢰와 연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출발해 회복력과 혁신을 기반으로 선진 공여국의 반열에 올랐다. 국제사회에서 연대와 책임의 가치를 실천하는 대표 국가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은 글로벌 보건 무대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보건이 왜 한국의 외교·경제 전략에서 중요한지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글로벌 보건은 자선이 아니라 경제·외교·산업을 아우르는 전략적 투자다.
글로벌 보건은 단순한 원조나 자선이 아니다. 중저소득국을 돕는 일이 한국의 국익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투자영역에 속한다. 필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2000년 설립된 국제보건기구로 중저소득국 어린이를 위한 필수백신 보급 및 접종을 지원하는 기구이다. 현재 세계 어린이 백신의 절반가량을 구매하고 있으며, 그중 약 11%가 한국산 백신이다. 이는 연간 1,5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한국은 Gavi의 4대 백신 공급국 중 하나로, 중저소득국의 건강 증진에 기여함과 동시에 국내 백신산업의 수출확대와 고용창출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오헬스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지금, Gavi를 통한 백신 조달은 한국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공공재’로 확장되는 대표사례다. 이는 산업 경쟁력, 외교적 위상, 인도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둘째, 글로벌 보건은 외교전략의 중요한 플랫폼이다.
보건은 형평성, 존엄, 안보라는 보편 가치를 중심으로 국제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재직 당시, 보건외교가 갈등을 넘어 신뢰와 대화를 여는 창이 될 수 있음을 직접 목격했다.
오늘날 G7, G20, APEC 등 주요 외교 무대에서 보건은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외교부 내 글로벌 보건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국제보건대사를 임명해 보건외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백신 생산국을 넘어, 한국은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를 설계하고 이끄는 리더로 도약할 수 있다.
셋째, 글로벌 보건에 대한 투자는 곧 국가 안보에 대한 투자다.
COVID-19는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까지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감염병 대응은 국경을 넘는 상호의존적 과제이며, 글로벌 보건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 안보전략이다.
한국은 팬데믹 초기 과학기반의 대응과 시민협력으로 국제적 모범을 보였다. 진단키트, 백신, 기술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에도 실질적 기여를 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이 보건안보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는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보다 선제적으로 글로벌 보건 논의에 참여해야 할 때다. 이는 단순한 연대를 넘어, 한국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안보전략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미 K-팝과 K-드라마로 세계적인 소프트 파워를 입증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계를 감동시킬 다음 이야기는, 고난을 이겨낸 경험과 공감의 리더십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로서의 여정이 될 것이다. 글로벌 보건에 대한 투자는 한국의 경제를 강화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 한국이 더 큰 비전과 책임감을 갖고 글로벌 보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호세 마뉴엘 바로소 現 세계백신면역연합 이사회 의장·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전 포루투갈 총리
호세 마뉴엘 바로소 現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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