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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
피의자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수수하고, 그 대가로 사건을 무마해주며 사건기록을 조작·은닉하는 등 각종 직무상 불법행위를 저지른 현직 여성 경찰관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12일 의정부경찰서 수사과 소속 팀장인 정모(52) 경위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정 경위에게 뇌물을 준 대출중개업자 김모(43)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정 경위는 2020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여러 사기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던 김씨에게 “사건을 모아서 모두 불기소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해 수사 무마 등 명목으로 22차례에 걸쳐 총 2억112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정 경위는 김씨에게 사건 기록을 제공하고(공무상비밀누설), 허위로 그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고(허위공문서작성 등), 도피자금을 준(범인도피) 혐의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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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chatGPT |
◇아무런 제약 없이 김씨 사건 재배당받고...사건기록 유출·은닉
범행 착수 과정에서 정 경위는 먼저 김씨 주소지를 의정부서 관할 내로 옮기게 해 김씨가 피의자인 사기 사건(고소인 기준 16건)을 다른 경찰서로부터 이송받거나 내부 재배당받았고, 이를 불송치 결정하거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특히 검찰은 정 경위가 “지인 아들이 고소인인 사건이다” “평소 알고 있던 사채업자가 피의자인 사건이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의정부서 내 다른 경찰관이 갖고 있던 김씨 사건 재배당을 요청했는데, 별다른 문제 없이 정 경위에게 재배당됐다고 설명했다.
정 경위는 범행 기간 동안 여러 직무상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7월에는 김씨에 대한 사기 사건 3건의 고소장·고소인 진술조서 등 사건기록을 김씨에게 줬고, 그해 10월에는 김씨가 경찰서에 오지도 않았는데 마치 그가 출석해 조사를 받은 것처럼 허위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뒤 기록에 포함시켰다. 11월에는 김씨에 대한 사기 사건 기록 가운데 영장집행 결과 자료 등 서류를 임의로 빼내어 폐기하기도 했다.
또 수사 기록 중 고소장을 임의로 바꾸는 등 조작한 뒤 기록을 검찰에 송부하지 않고 3년간 캐비닛에 방치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그는 2022년 5월 김씨가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도주하자 “외국으로 도망가라”며 도피자금으로 3850달러(약 500만원)를 주고, 약 2년 뒤인 지난해 9월 김씨가 별건으로 구속된 사실을 검찰로부터 통보받고도 수사 중지된 김씨 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의식해 노골적으로 금품 요구...“남용방지책 필요”
검찰 수사 결과 정 경위는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로 김씨와 소통하며 “오늘 돈 줘. 다 불기소해 버릴 테니까” “불기소를 내가 마무리한다는 거 매력 있지 않아? 어느 검사보다 나을 거야” “절대 구속은 안 되게 할거야, 그러니 꼭 나랑 약속 지켜줘” “내년부턴 수사권 독립되고 바꾸어지는 시스템은 김씨 세상” 등의 메시지를 수차례 보냈다.
범행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기소 의견인 사건만 송치하고,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사건은 불송치 결정을 하는 등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돼 권한이 강화된 점을 과시한 것이다. 이른바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이듬해 시행되며 이뤄졌다.
이번 사건 수사는 수사권 조정 전에 정 경위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김씨 사기 사건을 서울고검의 재기수사 명령으로 지난 4월 중앙지검이 다시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뇌물 공여 사실을 진술하면서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달 정 경위에 대한 계좌추적과 압수 수색 등을 하고 그를 체포·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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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건 방치 과정. /서울중앙지검 |
검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①경찰 불송치 권한 남용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②사건 및 기록 관리 시스템도 보완해야 하며 ③사건 배당 시스템에 대한 정비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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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관련 사건 배당 상황. /서울중앙지검 |
검찰 관계자는 “본건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은 경찰에 통보하고, 정 경위가 불송치 결정한 사건 재수사 등 후속 조치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 통제를 강화해 범죄 피해를 본 국민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받고 국가 형벌권이 적정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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