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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태경 기자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중단됐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재개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노동 정책에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주 4.5일제, 정년 연장 등 노사 간 강한 충돌이 예상되는 현안들이 포함돼 있다. 노란봉투법은 임기 초부터 처리될 가능성이 크고,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양분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통해 노동 현안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을 인터뷰했다.
−기업들은 우선 추진될 노란봉투법 파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노조법 개정의 핵심은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자신이 속한 하청 업체가 아닌 원청 기업과의 교섭도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대기업이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우려와 최저임금 수준밖에 못 받는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 사이에서 타협 지점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노사가 각각 무엇을 양보해야 하나.
“노란봉투법 개정이라는 상황까지 온 데에는, 수십 년간 하청 단가를 쥐어짜 온 원청 대기업들의 책임이 있다. 하청 노동자들이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단가를 제대로 쳐준다면, 노조법 개정 관련 사회적 합의 지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은 대기업·공기업 등 정규직 중심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중소기업·하청 노동자의 임금 수준 개선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노동계 책임도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시해야 한다. 대기업 임금을 천천히 올리고, 중소기업이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양대 노총이 이런 논의를 회피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설득하고 독려할 책임이 있다.”
−정년 연장이나 주 4.5일제 도입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고령화로 인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제도가 잘못 설계되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할 수 있다. 정년이 늘어나면 청년 고용이 줄고, 인간의 생산성을 추월하는 AI(인공지능)와 로봇 도입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주 4.5일제도 마찬가지다. 사업 여건이 열악하고 임금도 취약한 중소기업에 주 4.5일제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화 논의도 현장 실태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정부가 내야 할 정책 성과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주요 노동 정책은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성급하면 노동계든 경영계든 강한 반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따져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노사정 중심의 경사노위 테이블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청 노사, 5인 미만 사업장 노사,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소비자, 전문가까지 포함해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
−‘소년공 출신’ 이 대통령에 대해 노동계에서 기대하는 바가 큰데.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 전태일 정신을 잘 아는 분이라고 본다. 제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으로 있던 시절, 전태일 50주기 추도식을 경기도와 함께 열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이 추도사에서 본인도 소년공 출신임을 밝혔다. 전태일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 정규직이었지만, 자신의 처우 개선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시다나 미싱사들을 위해 살신성인했다. 이 대통령 역시 그런 정신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에 대해서도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하고(2조), 노조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3조)이 골자다. ‘노란봉투법’이라고도 한다. 2009년 쌍용차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자, 이들을 돕기 위한 성금이 노란 봉투에 담겨 전달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한석호
1964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입문해 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 투쟁동지 위원회를 결성해 투쟁하다 구속됐다.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던 인천에서 현장 노동자 조직 사업에 참여했고,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민주노총 출범 후에는 금속산업연맹 조직실장과 사회연대위원장을 지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을 맡았고, 불안정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출범한 한국노동재단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정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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