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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없이도 사는법]이재명 대통령 재판 연기, 법적으로 다툴 방법은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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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없이도 사는법]이재명 대통령 재판 연기, 법적으로 다툴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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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전 선제적 연기 “바람불기 전 누운 법원”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현직 변호사로서 수년째 법조를 취재해왔습니다. 뉴스 속의 법 이야기를 알기 쉽고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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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 7부(재판장 이재권)가 지난 9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면서 오는 18일 예정됐던 파기환송심 재판의 기일을 추후지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입니다. ‘소추’에 재판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견해대립이 있는 부분인데 법원이 포함된다고 보고 재판 중단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지만, 서울고법의 이 같은 해석에 따르면 이 대통령 임기 내에 재판이 열리기는 사실상 어려워진 셈입니다. 다음날인 10일 이 대통령 형사사건 중 가장 복잡하고 덩어리가 큰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33부(재판장 이진관)도 “헌법 84조를 적용해 기일을 추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사건을 수사해 공소유지를 맡아온 검찰이 법원의 이런 조치를 다툴 방법이 있을까요. 먼저 법원의 결정에 대한 ‘항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403조는 ‘판결 전 소송절차에 관한 결정에 대해서는 특별히 즉시항고를 할 수 있는 경우 외에는 항고를 하지 못한다’고 돼 있습니다.


‘기일 추정’(추후지정)은 판결 전 소송절차에 관한 결정이고 따로 즉시항고 절차를 정하고 있지 않아 항고 대상이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이의신청은 가능할까요. 형소법 304조는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재판장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따라서 재판부의 기일 추정에 대한 이의신청은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미 기일 추정을 한 재판부로서는 사정변경이 없는 한 기일 추정을 뒤집는 결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검사 개인이 ‘재판을 할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을 내는 것은 어떨까요. 이에 대해서도 어렵다는 견해가 더 많습니다. 검찰이 공소유지를 하는 것은 기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활동이지 자연인으로서 기본권을 행사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검사가 아닌 일반 국민의 헌법소원 가능성을 보겠습니다. 실제 헌재에는 지난 9일부터 ‘서울고법 재판부의 이 대통령 재판 기일추정으로 평등권이 침해됐다’는 헌법소원 네 건이 접수됐습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재판부의 불소추 특권 적용이 위헌이라거나, 헌법 84조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헌법조항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헌재는 법령이나 공권력의 행사가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헌법 조항은 위헌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과거 헌재가 헌법 84조 위헌확인 사건에서도 판단한 법리입니다.

또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할 수 없게끔 한 현행 헌법재판소법에 비춰서도 이번 헌법소원은 헌재의 문턱을 넘기 어려워 보입니다. 대법원의 공직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이후 민주당이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가능하게 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행 법제에서는 헌법소원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서울고법의 기일추정은 대통령 당선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전에 법원이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입니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풀이 눕는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만일 이 법안이 12일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되고 법원이 법에 따라 재판을 연기했다면 평등권 침해 여부 등 이 법안의 위헌성에 대한 헌재 판단을 받을 여지가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이 법안 통과 전에 선제적으로 재판 연기 조치를 취하면서 그런 여지가 없어졌고 정작 민주당은 이 법안을 비롯해 상법 개정안, 방송 3법 개정안 등의 처리를 차기 지도부 출범 이후로 미뤘습니다.

이처럼 법 통과 전 취해진 법원의 선제적 조치로 이 대통령은 2030년 6월까지 재임 기간 동안 사법 리스크를 사실상 벗어나게 됐습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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