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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뷰] “그래도 선전하지 않았나”… 한심한 국민의힘

조선일보 최재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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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뷰] “그래도 선전하지 않았나”… 한심한 국민의힘

서울흐림 / 26.9 °
쇄신 없는 혼돈의 제1 야당
의총 갖고는 답 안 나와
75만 당원에게 묻고
그 길로 가라
예상은 했지만 국민의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시종일관 민주당에 끌려다니다가 8.27%포인트 차로 졌다. 여당이 대선에 패배해 정권을 내줬으면 당 지도부가 물러나고 새로운 리더십이 쇄신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 더구나 이번은 어이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더불어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한 선거였다. 그런데도 지금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절망스러운 수준이다.

대선이 끝난 지 일주일 넘게 흘렀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 구주류에는 총체적 실패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대선 패배의 의미를 축소하는 쪽에 그들의 이해관계를 맞추고 있다. 일부 인사는 사석에서 “그래도 선전하지 않았느냐”며 뿌듯해한다. 선거 막판에 작동한 보수층의 견제 심리, 유시민씨 실언 등을 통한 반사이익 덕분에 그나마 표차를 줄인 것인데 그들이 잘해서 그런 걸로 착각한다. 이번 대선이 ‘윤석열 정권 심판’ 선거라는 점은 자명하다. 윤 정권을 뒷받침하고 대선을 책임졌던 세력들이 뒤로 빠지는 것이 상식이다.

대선 국면에서 1명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서 국민의힘 의원은 107명(지역구 89명, 비례 18명)으로 줄었다. 친윤석열계 의원이 30명, 친한동훈계가 20명, 중간 지대 의원이 50명 정도라고 한다. ‘중간 지대’의 상당수는 국민의힘 공천장만 받으면 당선되는, 그래서 누가 공천하느냐에 목을 매는 영남권 의원들이다. 주도권을 구주류 당권파가 행사하는 구조 속에서, ‘의원총회’는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와해된 지금, 의총이 사실상 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 역할을 하는 기형적 상황도 겹쳤다.

내달 초부터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 상병 특검’ 등 세 개의 특검이 돌아간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넘어 국민의힘으로 수사가 확대되면서 적어도 연말까지 광풍이 불 것이다. 당대표와 원내 지도부를 재정비하는 민주당도 강성 탈레반들이 대야(對野) 공세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여당 의원은 국민의힘에 대해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의원도 나왔다. 대선에서 41.15%의 지지를 받은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으로 몰아 해산시키겠다는 발상이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빈말이 아닐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 그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다.

어느 때부터 국민의힘은 당원은 없고 ‘배지(국회의원)’가 주인인 정당이 됐다. 윤석열 정권 들어 더 심해졌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금도 친윤 구주류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앞이 안 보이는 때일수록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런 답도 안 나오는 의총 대신 75만 당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지금의 혼란을 정리할 유일한 길이다.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당대표 선출이 다수 당원 뜻이라면 그 길로 가면 된다. 김문수든, 한동훈이든, 김재섭이든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핵심은 쇄신을 하겠다는 사람 중 한 명이 선택을 받고 변화를 모색하는 ‘정상성’의 회복이다. 만약, 당원 뜻이 그게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 그 또한 국민의힘의 선택이다.


어제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45%, 국민의힘 지지도는 23%로 나왔다. 지난달과 비교해 양당 지지도 격차는 9%포인트에서 22%포인트 차이로 벌어졌다. 대선 컨벤션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차이가 크다. 국민의힘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런 식으로 서서히 잊히는 것이다.

[최재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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