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임윤찬-메켈레 ‘20대 천재 듀오’…외면받던 라흐마니노프 4번 살려냈다

한겨레
원문보기

임윤찬-메켈레 ‘20대 천재 듀오’…외면받던 라흐마니노프 4번 살려냈다

속보
구윤철 "농축수산물 최대 50% 할인…2만원내 생필품 지원 '그냥드림' 확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걸출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모두 4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그중 2번이 가장 인기가 높고 3번, 1번, 4번 순으로 자주 연주된다.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 클래식’을 보면, 발매된 음반이 2번(309개), 3번(245개), 1번(98개), 4번(71개) 순이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임윤찬(21)은 이 가운데 4번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았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핀란드 태생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29)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 협연이었다.



일찍이 스타로 떠오른 ‘20대 천재 듀오’는 수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세심하게 타이밍을 조율했다. 임윤찬은 강약과 템포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을 선보였다. 춤이라도 추듯 현란한 몸동작을 선보인 메켈레는 첼리스트 출신답게 유려한 현의 흐름을 뽑아냈다. 두 젊은 음악가의 에너지가 합을 이루며 생동감을 뿜어낸 공연이었다. 전날 공연을 관람한,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전공한 이소영 음악평론가는 “반짝반짝 빛나는 두 천재가 마치 실내악이라도 하듯 환상의 조합을 이뤄냈다”고 평했다. 이따금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리듬을 타며 고개를 흔드는 두 사람의 모습도 닮은꼴이었다. 건반을 두드리는 임윤찬과 지휘봉을 휘젓는 메켈레의 손짓과 눈짓, 고갯짓이 앙상블을 이루며 발레리노가 추는 날렵한 파드되(2인무)를 연상케 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협주곡 2번이 감상적이고 3번이 격정적이라면, 불협화음이 담긴 재즈풍의 4번은 모호하고 현대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1927년 이뤄진 4번 초연 당시 지루하고 단조롭다는 혹평을 받았다. 메켈레-임윤찬 조합의 이날 4번 연주는 2번, 3번의 낭만과 격정을 뒤섞은 듯했다. 산만하고 난해한 선율들도 두 사람의 낭만적 해석에 녹아들어 쏙쏙 귀에 꽂혔다. 매켈레는 때론 거침없이 휘몰아치며 질주했고, 어쩔 땐 속삭이듯 느긋하게 속도를 낮추며 임윤찬과 균형을 맞췄다. 2027년부터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와 미국 시카고 심포니를 동시에 책임지는 메켈레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1위’에 선정됐다.



메켈레-임윤찬 듀오의 새로운 해석은 지하 수장고에 방치된 이 곡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앞서 지난 4일에도 두 사람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 곡을 연주했는데, 호평이 쏟아졌다. 프랑스 클래식 음반 전문지 디아파종은 이날 공연을 ‘전기충격’으로 묘사하며 “천재적인 듀오가 러시아 작곡가의 외면받던 협주곡을 되살려내며, 그 곡에 젊음과 화려함, 순수함을 다시 불어넣었다”고 평했다. ‘디아파종 음반상’으로 널리 알려진 이 매체는 “임윤찬이 모든 음을 조각하듯 다듬어 그 어떤 작은 음표도 놀라울 만큼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며 “피아노의 깊은 곳에서 점진적으로 고조된 강렬한 표현들이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만들어냈다”고 격찬했다.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지난해 미국 보스턴 협연 장면. © Robert Torres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지난해 미국 보스턴 협연 장면. © Robert Torres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작곡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빼어난 해설가’라면, 임윤찬은 곡의 다양한 면모를 새롭게 드러내는 ‘탁월한 해석가’다. 임윤찬이 지난해 발표한 쇼팽 연습곡 음반에 이어 올해 세계 곳곳에서 연주하고 있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과감하고 파격적인 해석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소영 평론가는 “라흐마니노프 4번 협주곡은 웬만한 내공을 지닌 연주자들은 손을 대기 꺼리는 곡인데, 다양한 색채와 무기를 지닌 임윤찬에겐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효율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며 “임윤찬이 과하지 않은 우수와 우아한 서정성을 보여주면서도 이 곡에 담긴 재즈와 현대음악 측면도 잘 드러냈다”고 말했다.



임윤찬과 메켈레는 13~15일 세차례 더 공연한 뒤, 이달과 다음달 일본과 영국, 미국,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등에서 이 곡을 다시 연주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