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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사법 신뢰, AI 도입해 회복하자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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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사법 신뢰, AI 도입해 회복하자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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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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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변호사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 공약의 시범사업으로 ‘사법 인공지능’의 도입을 제안한다. 당장 판사를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단 판사, 검사, 경찰관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시작해보자.



사법 분야는 국가 업무 중 가장 패턴화·정형화되어 있다.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고 신문하며, 증거를 기록화하여 검찰에 송치한다. 검사는 기록을 보고 혐의가 있으면 공소장을, 혐의가 없으면 불기소장을 작성한다. 판사도 증인을 신문하고, 기록을 검토한 뒤 결론을 내고 판결문을 쓴다. 국가 업무 중 인공지능을 도입하기에 이만큼 최적인 분야는 없다.



현재 사법 시스템이 당면한 큰 문제 중 하나는 업무량 과부하와 이로 인한 사건 처리의 지연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수행하는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를 탁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예컨대, 사건기록을 분류·검토하고 정리하는 업무, 복잡한 증거자료를 요약하여 수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 동종 판례를 검색하고 요약하는 업무,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조사 대상자를 제안하는 업무, 수사·재판과정을 기록하고 조서를 작성하는 업무, 공소장과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는 업무 등은 인공지능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적용 법조 등 판결문의 기술적 부분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



현재 법원과 검찰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약 절반가량이 비수사·비재판 부서에 소속해 행정 업무를 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이 업무를 상당 부분 대신한다면, 인력 효율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법원·검찰·경찰 구성원들은 수사와 재판의 본질적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고, 현재 수사·재판 지연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인공지능은 수사·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적어도 인간이 갖는 정치적,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오는 편향성 문제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기존의 편견을 답습·반복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최근에는 튜닝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기존의 판사·검사들에게도 인공지능의 지원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던 습관이나 편견을 발견하고 성찰함으로써 법리적으로 더 단단해질 기회가 된다.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사법절차가 더욱 투명해지고,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원·검찰·경찰 구성원들이 사법 인공지능을 이용하게 되면, 사례를 축적하면서 사법 인공지능도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인공지능이 고도화하면 장기적으로는 판사, 검사를 대체하는 것도 완전히 허무맹랑한 일은 아니다. 인공지능 판사에 의한 전심절차를 도입하고, 당사자가 불복하는 경우 상급심에서 인간 판사에 의한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도 상상할 수 있다. 사법 인공지능은 변호사 선임이나 나홀로소송이 어려운 서민의 사건까지 조력할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형 로펌에 맞설 무기가 생기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 구조가 비약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최근 검찰·경찰이 사용하는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구축에 약 1518억원을 투입했다. 이에 비해 챗지피티가 추산한 사법 인공지능 개발비용은 33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주변 시스템 연계와 통합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2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법원 1년 예산이 2조원이니, 그 10분의 1이면 개발할 수 있다.



개발 기간은 얼마나 될까. 관련 특별법 제정, 티에프(TF) 구성 및 구체적 사양 확정, 최근 10~20년 치 수사·재판 기록의 전자화 및 학습, 미세조정 등 절차를 감안하면 2년 정도면 시범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인공지능 도입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책임 소재 문제, 데이터의 편향성과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인공지능 도입 자체를 꺼려서는 안 된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윤리적 기준과 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기술적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사법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서류 정리 및 작성, 수사 방향 설정, 프로파일링 등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우물쭈물하다 도태될 것인지, 선도자가 되어 무한한 기회를 누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사법 인공지능 개발 및 도입이 대한민국 사법체계 혁신의 역사적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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