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최정진 |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궁금증(recurring curiosity)이 있다. 투표 도장(voting stamp)에 왜 삐딱하게 생긴 문양(tilted pattern)을 새겨 놓은 걸까.
많은 유권자는 이 모양을 사람 ‘인(人)’으로 오해하지만(mistake), 실제로는 점 ‘복(卜)’ 자다. 정확히 말하자면(to be precise), 원래 사람 ‘人’이었던 것이 나중에 점 ‘卜’(divination)으로 바뀌었다.
1948년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최초의 선거가 실시됐을 당시엔 선거법상 기표 도구(voting tool)에 대한 별도의 규정(specific regulations)이 없었다. 투표용지에 ‘○’ 모양으로 찍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붓두껍(brush cap), 탄피(bullet casing), 볼펜 뒷부분 등 동그란 것을 편의대로(at their convenience) 사용했다. 그렇게 1980년대 중반까지도 지역마다 제각각 다른 도구를 이용해 부정선거(election fraud) 우려도 끊이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플라스틱 재질 원형 기표봉이 도입된 건 1985년 제12대 총선 때였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기표봉으로 찍은 인주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용지를 접으면(fold the ballot) 다른 후보 칸에 도장밥이 묻어(smudge onto other candidates’ boxes) 무효표로 처리되는(result in the vote being invalidated) 경우가 빈발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to address this issue)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맞붙은(run against each other) 1992년 제14대 대선부터는 기표 원형 안에 사람 ‘人’ 모양이 삽입됐다(be inserted inside the circular mark). 사방이 대칭인 ‘○’과 달리(unlike the perfectly symmetrical ‘○’) 상하좌우 식별이 가능해(be distinguished in all directions) 어느 쪽에 기표했는지 명백히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정치적 논란(unexpected political controversy)이 또 생겨났다. ‘人’ 모양이 김영삼 이름 ‘삼’의 ‘시옷(ㅅ)’과 비슷해 특정 후보 이름을 연상케(be reminiscent of a specific candidate) 한다는 이의가 제기됐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94년 통합선거법 제정과 함께 기표 도장 문양을 현재와 같이 동그라미 안에 점 ‘卜’ 자가 들어간 형태로 변경했다. ‘卜’자는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narrow from top to bottom) 모양새여서 비대칭 식별을 분명히 해준다(make its asymmetry distinguishable). 따라서 투표용지를 접었을 때 잉크가 다른 칸에 묻어도 원래 기표와 쉽게 구분할 수 있어 무효표 처리 가능성(likelihood of the vote being invalidated)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유권자가 기표하는 즉시 건조되는 특수 속건성 유성 잉크(quick-drying oil-based ink)도 도입됐다. 그리고 2005년에는 잉크 인주가 내장돼 있어 인주를 따로 찍을 필요 없이 바로 기표할 수 있는 ‘만년 기표봉(self-inking stamp)’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卜’자는 본래 ‘점치다(divine)’ ‘헤아리다(foresee)’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은 국가 미래를 점치는 중요한 행위인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make a careful, thoughtful decision) 한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번에 더 많은 ‘점 복(卜)’을 받아 선출된 새 대통령이 과연 이 나라와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복 복(福)’으로 화답할지 두고 볼 일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구독하기
[윤희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