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D發 가격 인하 확산에 업계 전반 수익성 급락
정부, ‘치킨게임식 경쟁’ 경고했지만 효과 미미
과잉 생산·수요 둔화에 구조조정·통합 불가피
정부, ‘치킨게임식 경쟁’ 경고했지만 효과 미미
과잉 생산·수요 둔화에 구조조정·통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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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현지시간) 촬영된 사진에는 중국 동부 장쑤성 쑤저우에 위치한 타이창항에서 브라질로 출항할 자동차 운반선 ‘BYD 선전’에 선적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BYD 전기차들이 보인다.(사진=AFP) |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중국 전기차(EV) 산업이 전례 없는 가격 전쟁에 휘말리며 업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 선두업체인 BYD(비야디)의 선제적 가격 인하가 도화선이 되면서 업계 전반으로 가격 붕괴가 확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주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지난해부터 감소세 진입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주 주요 중국 전기차 브랜드 대표들을 베이징으로 불러 ‘치킨게임식 경쟁’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중국 정부는 각 대표에게 “자율규제”를 해야 하며 원가 이하의 판매나 과도한 할인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는 주행 거리가 0km인 신차을 중고차로 등록해 판매하는 ‘제로 마일리지 차량’ 이슈도 거론됐다. 이는 업계가 재고를 처분하고 판매량을 부풀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잇따른 경고에도 중국 전기차 산업의 재편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이미 중국 정부는 2023년 중반에도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 입회 하에 BYD, 테슬라, 지리 자동차를 포함한 16개 주요 업체들에게 ‘비정상적인 가격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서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며칠 뒤 CAAM은 반독점법의 기본 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 협약 중 가격 관련 문구를 삭제했고 가격경쟁 양상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존 머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수석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충격적”이라며 “수요 부족과 극단적인 가격 인하가 이어지고 있어 결국 업계 전반에 대대적인 통합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격 전쟁은 심각한 과잉 생산이라는 배경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EV 제조업체 수는 감소세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업계 전체 생산 능력의 절반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스구오(Gasgoo)에 따르면, 2024년 중국 자동차 산업의 평균 가동률은 49.5%에 불과했다.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받쳐주지 못하는 구조가 가격 하락 압박을 가중시키는 배경이다.
지위에오토(Jiyue Auto)는 변화 속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사는 지리 자동차와 바이두가 공동 출자해 설립했지만, 첫 차량 출시 1년여 만에 생산을 축소하고 신규 자금 조달을 모색하고 있다. 2024년에는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신에너지차(NEV) 전용 브랜드 중 처음으로 합병(M&A)이 진행됐으며, 16개 브랜드가 시장에서 퇴출되고 13개가 새로 진입했다.
중국 업체들은 과잉 생산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국제 시장이 그 해답이 될지는 미지수다. 자동차 컨설팅 업체 JSC 오토모티브의 요헨 지버트 대표는 “미국 시장은 완전히 닫혀 있고, 일본과 한국도 중국 차가 대거 밀려들면 곧 문을 닫을 것”이라며 “작년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러시아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동남아시아도 더이상 기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이차오 알릭스파트너스 컨설턴트는 “선도 업체가 가격을 먼저 낮추면,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며 “낮은 가동률이 경쟁을 촉발하는 근본 원인이며, 여기에 수출 시장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1위’ BYD 공격적 가격 전쟁 나서
이런 상황에서 업계 1위인 BYD는 더욱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3일 BYD는 20개 이상 모델에 최대 34%까지 차량 가격을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1위 업체인 BYD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면서 리오토, 지리자동차, 체리자동차 등 기업들도 8~47% 수준의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지버트 대표는 “BYD는 모든 경쟁자가 포기하게 만들어 독점적 지위를 노리고 있다”며 BYD의 공격적인 전략이 차량 덤핑, 딜러 관리 문제, 공급업체 압박 등 다양한 우려를 야기한다고 밝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하락이 일견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신뢰를 약화시키며, 실제로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를 사자마자 가격이 더 떨어지면 어쩌냐”는 불만이 늘고 있다. 제조사들이 생존을 위해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품질, 안전, 사후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BYD는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나, 업계 전반에 걸친 수익성 저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BYD는 5월 말 주가 정점을 찍은 이후 2150억 위안(40조 6049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가격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테슬라 등 업체들은 중국시장에서 철수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머피 애널리스트는 “테슬라는 이 회사들과 경쟁하고 업계 상황을 파악하려면 남아 있어야 할 수도 있지만, 위험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치열한 가격 경쟁 속 원가절감을 위한 압박은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해 말 BYD가 한 공급업체에 가격 인하를 요구한 일이 논란이 됐고, 이 과정에서 BYD가 공급업체에는 원가 인하를 압박하면서 해당 공급업체는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재무제표상 부채는 작게 보이게 하는 ‘회계상 왜곡’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회계 자문사 GMT 리서치는 BYD의 실제 순부채가 2024년 6월 기준 공식 발표(277억 위안)의 10배가 넘는 3230억위안(약 4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여파는 중국의 자동차 유통망에도 미치고 있다. 4월 이후 두 개 성(省)에서 BYD 차량을 판매하던 딜러 그룹들이 연이어 폐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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