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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종교 공약의 영험과 동티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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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종교 공약의 영험과 동티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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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을 방문해 김종혁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달 19일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을 방문해 김종혁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선거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까? 지역 단위 선거라면 지역구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계 인사들의 협력과 지지를 얻는 것이 표를 얻는 일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선과 같은 전국 단위 선거가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종교계 일반’을 모두 만족시킬 선거 전략은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종교계 일부의 요구를 수용했을 때 얻는 이익만큼이나 거기에서 소외되었다고 여기는 다른 편에서 “종교 편향”을 주장했을 때 잃는 손해가 발생한다.



그러니 대통령 선거에서 종교계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운동은 그야말로 계륵과 같다. 종교 집단들의 다양하고, 상호 모순되고, 때로는 곤란한 요구들을 공평하게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다지 득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종교계를 무시하거나 어느 한쪽을 편드는 인상을 준다면 확실한 손해를 입는다. 그야말로 영험은 기대하기 어렵고 동티는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그래서 전국 단위 선거운동에서 종교 문제는 포괄적이고 어정쩡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계 지도자를 예방하여 덕담을 주고받거나, 각 종교에 속한 지지자들을 조직해 공개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주요 양당의 종교계 대응은 이런 패턴을 벗어나 있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개신교계 사학재단 단체와 정책 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한 발언은 일종의 정치·종교적 신앙고백이었다. “공산 대륙 끄트머리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기독교”라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극우 개신교계의 신념이지만, 후보 자신의 공개 발언으로서는 위험한 것이었다. 당장 불교계에서 종교 편향에 대해 항의했고, 국민의힘 쪽에서 조계종을 방문해 사과하며 이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이 나온 것이 종립학교의 ‘자율성’ 확대 정책을 약속하는 자리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은 듯하다. 신앙교육을 필수화하고 교원 임용에 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을 배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선대위 차원에서 종교 현안을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과거 대선에도 하부 조직에 종교계 인사들을 참여시켜 소통을 담당하게 한 사례는 있지만, 중앙선대위에 종교본부를 설치하고 각 교계 사정에 밝은 국회의원들을 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선거 기간 종교본부는 종교계 요구를 담은 구체적 공약들을 제안하였다. 예를 들어 불교 관련 정책에는 ‘전통사찰 보수정비 자부담 완화 및 재난대응 시설 확충’, ‘문화유산 관람료 감면 제도 개선과 복합유산에 맞는 관리체계 수립’,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연등회의 전승관 건립’, ‘템플스테이 및 명상 프로그램 지원 확대’ 등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뉴스타파’는 이 공약에 조계종이 포교 전략으로 강조하는 선 명상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 것을 문제 삼았다. 또 전통 사찰에 대한 국고 지원 확대, 문화유산 관람료 사용처에 대한 규제 완화 등 국민 세금으로 불교계 이권과 관련된 민원을 챙겨주는 내용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불교가 가진 이중적 속성과 관련된 오래된 쟁점이기도 하다. 불교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 집단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전통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불교와 ‘문화’로서의 불교 사이의 경계는 제도적 차원에서는 때때로 희미해진다.



또한 종교본부는 기독교 연합단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제안된 정책 일부를 공약에 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종교시설을 활용한 돌봄 활동과 지역사회 봉사활동 협력’, ‘종교시설 에너지비용 개편 방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종교계 활동 협력’, ‘‘생명존중의 날’ 기념일 지정 추진’, ‘인구감소 문제 해소를 위한 활동 지원’,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종교계 활동 지원’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계가 요구해온 ‘종립학교 신앙교육 자유 보장’, ‘기독교문화유산보호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의 의제는 수용하지 않았다. 일정한 원칙과 기준을 통한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 정부의 종교 공약에 포함된 사안들 다수는 논쟁적이다. 그러나 종교 관련 정책이 별다른 논의 없이, 때로는 암묵적 결탁에 의해 추진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다른 많은 영역과 마찬가지로 종교 분야에는 공익과 이권이 뒤섞여 있고 비판, 토론,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해악이 커진다. 그래서 종교 문제는 시끄러운 편이 우리 모두에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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