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시절 제작, 설계도 사라져
러시아의 Tu-160M 장거리 초음속 전략 폭격기. 기존 Tu-160을 일부 개량한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
우크라이나가 지난 1일 감행한 드론 공습 ‘거미줄 작전’으로 러시아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120여 대 중 약 20%가 출격 불능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핵 공격이 가능한 이 폭격기들은 본래 러시아가 핵 억지 목적으로 보유 중이었으나, 최근엔 우크라이나 후방을 겨냥한 미사일 공습에 이용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표적이 됐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매체들 주장처럼) 피해가 크지는 않다”며 “수리해서 쓰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망가진 폭격기를 대체할 새 폭격기를 생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러시아 공군의 전략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러시아는 왜 폭격기를 새로 만드는 것이 힘들까.
이 폭격기들은 옛 소련 시절인 1990년대 이전에 제작된 것이다. 30~40년 이상 새 모델로 교체되지 못한 채 계속 사용돼 왔다. 구소련 해체 직후인 1990년대 러시아가 극도의 경제난에 빠지면서 폭격기 설계와 생산 시설 및 인력이 상당수 사라진 탓이다. 냉전 시대 미국과 군비 경쟁으로 덩치를 키웠던 국영 군수기업들은 당시 군비와 재정 감축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폭격기 개발을 담당했던 기업 대부분이 극심한 자금난에 빠졌고, 핵심 인력은 뿔뿔이 흩어졌다.
폭격기 설계를 담당했던 투폴레프(Tupolev) 설계국은 1992년부터 대부분의 군용기 개발을 중단했다. 카잔, 쿠이비셰프, 울리야놉스크, 옴스크, 타간로크 등에 흩어져 있던 군용기 조립 및 부품 공장들도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가장 큰 규모였던 카잔 공장은 대량 해고 후, 민간 항공기 제조 공장이 됐다. 이탈한 엔지니어 중 일부는 당시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등에 취업해 한국에 노하우를 전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2000년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너지 수출로 정부 재정이 안정되자, 군수 생산 시설 복구에 나섰다. 투폴레프 설계국은 기존 국영 항공기 기업을 한데 모은 ‘통합항공기제작사(UAC)’ 산하로 들어가 다시 군용기 제작에 나섰다. 그러나 폭격기는 수요가 적고, 생산 시설도 마땅치 않아 새로 개발하지 않고 있다. 예외적으로 Tu-160 초음속 전략폭격기만 기존 모델의 개량 및 재생산 사업이 진행 중이다.
비싼 가격도 발목을 잡고 있다. Tu-22, Tu-160 등 초음속 전략 폭격기는 제작비만 2억달러(약 2700억원)가 넘어간다. 크고 빠른 장거리 전략 폭격기가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최신형 미사일과 드론이 폭격기 역할을 충분히 대신하고 있다. 한 대에 수천억 원 하는 폭격기를 만들어봐야 고작 대당 2000달러(약 270만원)짜리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폭격기 추가 생산을 가로막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