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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자 추방 그만” LA 시위에, 군인 2000명 동원한 트럼프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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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자 추방 그만” LA 시위에, 군인 2000명 동원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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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자 대량 체포로 대립 격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 당국과 시위대가 충돌했다./AP 연합뉴스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 당국과 시위대가 충돌했다./AP 연합뉴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비롯한 정부 요원의 연방 이민법 집행을 위협하는 폭력과 무질서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는 미국 정부에 대한 반란이며, 주방위군(National Guard) 2000명을 배치한다.”

캐럴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7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ICE 요원을 공격한 ‘폭력적 군중’에 대응하고자 이같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체포 대상 불법 이민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시위대가 이에 저항하며 충돌이 격화하자 군대를 투입했다는 것이다.

LA에서는 전날부터 정부 요원에 맞선 시위대가 수백 명씩 무리지어 화염병과 돌, 계란 등을 던지면서 거리 곳곳에서 불길이 솟고 있다.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며 제압에 나섰다. 트럼프가 군 투입을 결정한 배경엔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방탄복과 총기로 무장한 병력이 LA 시내와 외곽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6일 오전 ICE 요원들이 LA 한인 타운 근처의 대형 생활용품 매장 홈디포를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평소 히스패닉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ICE 요원들이 국토안보부 수사국 요원들과 함께 노동자들을 체포하자 사람들은 “ICE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10분쯤 떨어진 의류 매장 밀집 지역에도 연방 요원들이 나타나 직원들을 체포했다. 순식간에 몰려든 군중이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요원들에게 계란을 던지며 뒤엉켜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이날 최소 44명이 체포됐다.

이튿날인 7일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LA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32㎞ 떨어진 패러마운트와 콤프턴 지역에서 연방 요원들이 여러 건물을 돌아다니며 서류 미비자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전날 충돌 이후 조직된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막고 폭죽과 돌을 던지며 맞섰다. 이날도 정부는 시위대 118명을 체포했다.

지난 1월 출범 당시부터 ‘불법 이민자 대거 추방’을 내세웠던 트럼프 정부는 최근 들어 주요 단속 대상을 흉악범에서 취업 비자가 없는 노동자들까지 대폭 확대했다. ‘국경 차르(국경 문제 총책임자)’ 톰 호먼은 “이 나라 역사상 본 적 없는 수준의 직장 단속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미국 노동자 1억7000만명 중 약 4%가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민자다. 이 중 상당수가 건설 현장이나 농장 등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산업 생태계를 떠받쳐 왔다. 이들까지도 불법 이민자로 색출하겠다고 벼르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건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당국이 서류 미비자를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임기 첫해에 불법 이민자 100만명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추방 건수는 하루 평균 660건에 그쳤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최근 ICE에 “하루 3000명 이상 체포하라”며 ‘실적’을 요구했다. 이민 당국은 LA에 앞서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등에서도 여러 지역을 급습했다.

미 정부는 이번 사태를 완전히 진압하겠다면서 추가 병력 투입도 예고했다. 댄 봉지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은 소셜미디어에 “시위대가 혼란을 일으키면 우리는 수갑을 가져올 것이다. 법과 질서가 승리한다”라고 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 장관은 “폭력 사태가 계속되면 해병대도 동원하겠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주방위군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지금부터 시위하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금지하겠다. 무엇을, 왜 숨기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의 주방위군 투입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전망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 법률은 ‘반란이나 반란의 위험이 있을 경우’ 연방 정부가 주지사를 건너뛰고 주방위군을 배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시위가 일부 무질서하게 진행됐다 하더라도, LA 당국이나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지원 요청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반란’으로 간주해 주방위군을 투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통령이 주지사의 요청 없이 특정 주의 주방위군을 통제한 것은 1965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엔 앨라배마주에서 확산한 흑인 참정권 시위를 주방위군이 지나치게 과격하게 진압해 대통령이 통제권을 가져온 경우여서, 이번과는 명분이 달랐다. 민주당 소속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의 조치는 의도적으로 (더 격렬한 시위를) 선동하고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주(州)방위군

주지사의 지휘 아래 재난 대응, 폭동 진압, 지역 치안 유지 등에 투입되는 병력. 유사시엔 대통령이 명령을 내려 전쟁이나 해외 파병 등 연방 임무에 투입할 수 있다. 육군 주방위군과 공군 주방위군으로 구성된다. 평소엔 직업 활동을 하면서 매달 1회 군사훈련을 받아 ‘파트타임 군인’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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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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