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이에게 청량감을 선사하는 그만의 '시그니처 무브'인데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 모양새다.
영어로 말하는 그의 우승 소감 역시 비상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3월 전영오픈 정상을 석권한 뒤 외친 "아임 어 퀸, 나우(I'm a queen, now)"에 이어 또 한 번 적잖은 의미가 담긴 외국어 메시지를 입에 올려 세계 배드민턴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계 랭킹 1위인 안세영은 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인도네시아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강호 왕즈이(2위)에게 2-1(13-21 21-19 21-15)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올해 말레이시아오픈, 전영오픈, 수디르만컵(세계혼합단체선수권대회)에서 왕즈이를 만나 3전 전승을 거둔 기량차를 이번에도 이어 갔다.
다만 이날 안세영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경기 초반 그답지 않은 경기력으로 팬들 탄식을 자아냈다.
안세영의 대각 클리어가 연이어 왕즈이 호수비에 막혔다. 구석으로 깊숙이 셔틀콕을 때려 상대 허를 찌르려 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1게임 중반 4연속 실점하는 등 흔들리며 5-10까지 끌려갔다.
'점프'가 나오지 않았다. 타점이 낮다 보니 왕즈이 수비를 뚫는 데 애를 먹었다. 안세영답지 않은 실수가 잇달아 나왔고 공격은 꾸준히 사이드라인을 살짝 벗어났다. 6연속 실점으로 급격히 흔들리며 10-17까지 스코어가 벌어졌고 결국 1게임을 13-21로 헌납했다.
2게임 역시 초반부터 고전했다. 5연속 실점으로 0-5로 끌려가 승기를 뺏겼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발'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네트를 활용한 정교한 스트로크 공격이 나오지 않았고 특장점인 '질식 수비' 역시 실종됐다. 2게임도 6-11로 뒤진 채 인터벌을 맞았다.
후반 들어서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네트 앞에 바짝 붙여 상대를 끌어들이려는 의도의 공격이 자꾸 짧았다. 9-15로 뒤진 상황에서 하이 클리어가 네트를 또 벗어났다. 챌린지를 신청했지만 원심이 유지됐고 분위기를 완전히 내줬다.
그럼에도 안세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6연속 득점으로 다시 추격 불씨를 지폈다. 15-17에서 42번의 랠리 공방 끝에 때린 회심의 스매시 공격이 네트를 넘지 못했지만 이어 다시 3연속 득점으로 기어이 18-18, 스코어 균형을 회복했다.
이때부터였다. '기적'의 서막이 문을 열렸다.
입장이 바뀌었다. 이제 분위기는 '추격자' 안세영이 거머쥐었다. 왕즈이는 쫓기는 처지가 됐다. 결국 안세영이 스코어를 뒤집었다. 왕즈이 범실이 나와 2게임에서 처음으로 19-18 리드를 잡았고 이후 경기력을 회복해 21-19로 끝내 게임 스코어 타이를 이뤘다.
3게임도 접전 양상이었다. 여자 단식 세계 1·2위 랭커는 2~3점 차 시소게임을 이어 갔다. 9-9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안세영은 연속 득점으로 이날 처음 앞선 채 인터벌을 맞이했다.
서로 코트를 바꾼 뒤부턴 순조로웠다. 왕즈이는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안세영의 대각 반대편을 찌르는 공격과 절묘한 헤어핀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19-12로 점수 차를 크게 벌리며 승기를 손에 쥐었고 결국 6점 차로 3게임을 마무리했다. 특유의 포효가 인도네시아에 울러펴졌다.
"모두가 나를 믿어주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끝까지 경기에 집중했다. 그저 내 자신을 믿으며 포기하지 않은 게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해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명언 제조기'로서 면모는 지난 3월 영국 버밍엄에서도 한 차례 드러낸 바 있다. 당시에도 안세영은 왕즈이에게 2-1로 역전승하고 전영오픈 정상을 차지했다.
공식전 20연승을 완성하면서 4개 대회 연속 우승 대업도 달성한 순간이었다. 그보다 앞서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를 차례로 제패한 안세영은 최고 권위의 전영오픈 트로피까지 들어올려 '셔틀콕 여제' 지위를 공고히 했다.
우승 인터뷰에서 안세영은 "아임 어 퀸, 나우(I'm a queen, now)"를 소리 높여 외쳤다. 관중석에서 커다란 환성이 터져나왔다. 지금은 '안세영의 시대'임을 선언했다.
이어 "정말 놀라운 한 주다. 결승전을 이겨 정말 행복하다"며 환히 웃었다. '숙적' 천위페이(세계 5위, 중국)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분류되는 왕즈이를 상대로 역전 투혼을 발휘한 배경에 대해서는 "나를 믿었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경기에만 집중했다"며 영어로 힘줘 말했다.
기량은 물론 꾸준히 세계 제1공용어로 표현하는 그의 우승 소감 역시 '셔틀콕 퀸'으로서 입지를 단단히 떠받치는 모퉁잇돌로 기능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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