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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의 실패와 이재명 정부 [뉴노멀-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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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의 실패와 이재명 정부 [뉴노멀-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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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0일 미국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가 방미 중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오른쪽)에게서 받은 전기톱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며 연방정부 예산 삭감, 공무원 감축을 주도하던 머스크는 이날 “관료주의 혁파를 위한 전기톱”이라고 말했다. 옥슨힐/AP 연합뉴스

지난 2월20일 미국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가 방미 중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오른쪽)에게서 받은 전기톱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며 연방정부 예산 삭감, 공무원 감축을 주도하던 머스크는 이날 “관료주의 혁파를 위한 전기톱”이라고 말했다. 옥슨힐/AP 연합뉴스




손재권 | 더밀크 대표



일론 머스크가 전기톱을 들고 “관료제를 위한 전기톱”이라고 외치며 워싱턴에 등장한 지 불과 넉달 만에 그의 정부효율부(DOGE) 실험이 막을 내렸다. 애초 연방 예산에서 2조달러를 삭감하겠다던 야심 찬 공약은 1650억달러로 92%나 축소됐고 머스크는 사퇴했으며, 이후에 트럼프와 큰 충돌을 보이는 등 총체적 실패로 끝났다.



이번 사건은 머스크 개인의 도전 실패를 넘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실리콘밸리의 혁신적 방법론이 정부 운영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갓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



먼저 머스크의 짧은 워싱턴 실험이 남긴 교훈들을 살펴보자. 머스크가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에서 보여준 혁신의 성과는 크다. 그는 전기차 시장을 혁명적으로 바꿨고, 민간 우주개발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정부 운영은 기업 경영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는다.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의사결정이 빠르게 실행될 수 있지만, 정부에서는 의회, 법원, 각종 이해관계자의 복잡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작동한다. 머스크는 “관료제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했지만, 이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본질적 특성을 간과한 발언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비효율성’이라고 여겨지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기업처럼 빠른 의사결정을 추구하다 보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소수의 목소리를 배제할 위험이 크다.



실리콘밸리의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학습하라’는 문화는 혁신에는 유효하지만, 공공 서비스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사회보장제도나 의료보험 같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실험적 접근보다는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머스크의 2조달러 삭감 목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 연방 예산의 대부분은 사회보장, 메디케어, 국방비 등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의무 지출이다. 기업에서처럼 ‘부서 폐지’나 ‘인력 감축’을 단순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머스크의 실험이 보여준 또 다른 교훈은 정치적 현실의 복잡성이다. 그는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익숙한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을 정부에 적용하려 했지만, 정치는 끊임없는 협상과 타협의 과정이다. 공화당 의원들조차 자신의 지역구 이익에 반하는 예산 삭감에는 반대 목소리를 냈다. 머스크가 아무리 효율성을 강조해도 정치인들에게는 유권자의 표가 더 중요하다.



머스크의 사례는 기업이 정치에 깊이 개입할 때의 위험성도 보여준다. 테슬라는 전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인데, 최고경영자가 특정 정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테슬라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퇴임 이후엔 트럼프의 한마디에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머스크의 워싱턴 실험 실패가 외부인에 의한 정부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의 효율성 개선은 중요한 과제다. 다만 그 방법론은 민주주의 원칙과 공공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또 기업의 혁신 문화에서 배울 점들이 있지만, 정부 개혁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더 나은 서비스 제공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제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비대해진 정부 구조를 개혁하고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정책의 실효성을 찾아야 하는 큰 과제를 받았다. 혁신과 안정성, 효율성과 민주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지 일방적이고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한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머스크의 4개월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은 향후 정부 개혁 논의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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