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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파’와 ‘자주파’ 함께 기용… 李대통령의 ‘양손잡이 외교’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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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파’와 ‘자주파’ 함께 기용… 李대통령의 ‘양손잡이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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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의 외설(外說)]
이재명 대통령, 안보실 위성락·국정원 이종석 기용
對美 동맹파, 자주파 동시 배치
양손잡이 외교 가능할까
대미·대북 정책 혼선 우려도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국가안보실장에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를, 국가정보원장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기용했다. 위 전 대사는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미국통으로 이른바 대미 '동맹파'로, 노무현 정부 때 NSC 사무총장,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 전 장관은 대북통의 자주파로 분류된다. 둘은 노무현 당시 자주파 대(對) 동맹파 충돌 사건의 당사자이지만 이번 정부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끌어나가는 동지가 됐다. 외교가에선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국가안보실장에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를, 국가정보원장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기용했다. 위 전 대사는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미국통으로 이른바 대미 '동맹파'로, 노무현 정부 때 NSC 사무총장,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 전 장관은 대북통의 자주파로 분류된다. 둘은 노무현 당시 자주파 대(對) 동맹파 충돌 사건의 당사자이지만 이번 정부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끌어나가는 동지가 됐다. 외교가에선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출범 첫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등에 대한 인선을 발표했습니다. 즉각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대미(對美) 동맹파 위성락(71)과 자주파 이종석(67)이 동거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일찌감치 두 인사는 이재명 캠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둘이 한지붕에서 한솥밥을 먹는 것이 현장 기자들에게 낯설지만은 않지만, 정권을 잡아 공식 직책을 맡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외교가에서 동맹파나 자주파란 말은 이미 닳고 닳은 말 같지만 20년 전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사건’이 터졌을 때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날아가는 등 파장이 컸습니다.

위성락 실장이 외교부 북미국장이던 2004년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당시 북미 3과장이던 조현동 현 주미대사가 과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처장, 청와대 386인사들의 대미외교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

외교부 내부직원이 청와대에 보낸 투서가 발단이었습니다. 투서에는 “조 과장이 ‘청와대 젊은 보좌진은 탈레반(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수준이며 노 대통령이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당시는 미군 용산기지 이전 문제 등을 놓고 ‘자주파’로 대변되는 청와대와 NSC에서 “외교부의 미국 추종 외교가 너무 심하다”는 불만이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문에 단순 ‘술자리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 건은 결국 윤영관 당시 외교부 장관이 경질되는 대형 사건으로 번졌지요.


조현동 과장은 결국 보직해임된 뒤 국방대학원서 교육을 받다 인도 대사관으로 발령 나 3년을 근무했습니다. 위 실장은 조 과장의 직속 상관으로서 지휘 책임을 지고 6개월 만에 국장직에서 물러나, 이종석 NSC 사무처장 밑으로 파견 조치됐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던 동맹파 북미통 위성락이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인 안보실장으로 자주파 대북통인 이종석이 대북 및 대외 첩보기관인 국정원의 수장으로 한 지붕에서 동거하게 된 것입니다.

사태 당시 위성락 국장 밑에 있던 동맹파 조현동 과장은 윤석열 정부 때 외교부 1차관을 거쳐 현재 주미 대사로 있습니다. 21년 전 노무현 정부에서 악연이라면 악연이라 할 수 있는 세 사람이 직책과 발탁 배경은 다르지만 같이 외교안보 업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인생지사(人生之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李 대통령의 안보실험 ‘좌(左) 동맹·우(右) 자주’

한 가지 짚어봐야할 건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외교안보 진용(陣容)을 ‘좌 동맹·우 자주’ 구도로 짰느냐 하는 것입니다.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이는 단순한 통합 인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전략적 안보 실험이자 현실적 균형외교 구상에 따른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실용주의자’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미국통과 대북통을 동시에 기용한 것도 두 노선을 동시에 구사하는 ‘‘양손잡이 외교’를 해보려한다는 것입니다.


‘이종석 카드’는 대북용으로 북한을 향한 채널 복원과 신뢰 구축의 의지를 발신하고, ‘위성락 카드’는 미국 및 일본, 국제사회에 대한 ‘신뢰 유지’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 다자 외교와 국방 등을 아우르는 안보실장에 직업 외교관 출신이자 미국통인 위성락을 앉힌 것도 전반적인 대외 정책을 한국 외교의 정석인 ‘한미동맹 중심’으로 유지하는 등 ‘안정’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반면, 대북 중심 기관인 국정원은 철저한 한반도, 대북 중심인 이종석에 맡겨 2019년 하노이 노 딜(No Deal) 이후 경색된 남북 관계를 어떻게든 개선시켜보려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사드도 반대했던 이종석…정책 엇박자 우려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북한이 지난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 50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북한이 지난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 50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우려도 큽니다. 좌 동맹·우 자주의 양손잡이 외교가 의도대로 잘 굴러가기보다는 엇박자가 나서 미국과도 북한과도 다 잘 안 될 수 있다는 지적이지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외교는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공개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외교는 자칫 안미경중보다도 더 애매모호한 전략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종석 국정원장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도 맡았는데요. 당시 대북 대화, 한반도 평화를 연일 강조했지만, 2006년 북한은 느닷없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해 대북 대화파들에게 찬물을 확 끼얹었습니다. 이 사태로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다 19년만에 다시 이재명 정부의 국정원장으로 복귀하게 된 됐습니다.

그는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자주파가 아니라 ‘자동파(자주·동맹파)’라고 했지만, 지난 19년간 자주파로서의 면모를 계속 보였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2016년 7월 ‘중국 뺨 때린 사드, 대한민국이 잃어버릴 것들’이라는 칼럼에서 “실효성이 극히 의심되고 막대한 국익 손실을 초래할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미일 협력의 한 축인 지소미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는 2019년 8월 14일 한 토론회에서 “지소미아는 처음부터 잘못 맺은 것이며 파기해야 한다. 일본에만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태 18일만인 2020년 7월 3일 국회 강연에서 “공동연락사무소 파괴는 북한의 도발로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도 “거꾸로 남북이 만나면 어떻겠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막가파가 아니다. 이런 정도 이야기하면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위성락 카드’는 대미용, ‘이종석 카드’는 대북용이란 의도와 정반대의 역효과가 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가뜩이나 이 대통령은 2021년 7월 대선 후보 시절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체제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해 ‘점령군’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왼쪽 사진). 약 20분간 이뤄진 정상 간 첫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방미 초청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오른쪽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AP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왼쪽 사진). 약 20분간 이뤄진 정상 간 첫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방미 초청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오른쪽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AP 연합뉴스


다행히 지난 6일 취임 사흘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 통화를 했지만, 역대 대통령보다 다소 늦게 통화가 성사돼 이런 저런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이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입장에서 ‘이번 대선이 공정하게(fair) 잘 치러졌다’면서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이 우려되고 이를 반대한다’는 이례적인 언급을 해 한미 외교가에선 “이재명 정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초부터 대미(對美) 상호 관세 협상, 주한 미군 역할 조정 및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동맹인 미국과 각종 통상·외교 안보 과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상호 관세 정책은 시행 유예 기한이 내달 8일까지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아 새 정부 통상팀은 촉박한 상황에서 협상에 임하게 됐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미·중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동북아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졌습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천명하고 사상 처음으로 유럽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에 참전, 러시아와 군사적 밀월 관계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제 성장률은 0%대로 떨어져 ‘피크 코리아’라는 말까지 나도는 상황입니다. 사면초가, 백척간두, 풍전등화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정치, 경제, 외교안보 전 분야에 걸쳐 사용됩니다.

이재명 정부의 임기 5년에 많은 것이 걸려있습니다.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은 이재명 정부 시대에도 변함없이 계속 발송됩니다. 본 글이 이번 외교안보 인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구독’ 클릭으로 마음 표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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