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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정치를 끝낼 대통령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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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정치를 끝낼 대통령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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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신승근 | 뉴스총괄부국장



“모든 것을 혼자 다 100% 취할 수는 없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 가급적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으로 국민이 나은 삶을 꾸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적대와 전쟁과 같은 정치가 아닌 대화하고 실질적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되길 바란다. 자주 연락을 드리겠다.” 취임 첫날 국회의장, 여야 대표와 오찬을 한 이재명 대통령 모습은 ‘2002년 대선 뒤 노무현 대통령’과 유사해 보인다. 권위주의 청산,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외치며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선 노무현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주창하며 여야 정치권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응답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어깃장을 놨다. 대통령 권력의 절반을 내놓겠다는 파격적 제안까지 했지만 야당은 꼼수라 비난했고, 여당에서도 철없는 객기로 치부했다. 노무현은 지쳐갔고, 논란 속에 국민의 마음도 멀어졌다.



국민은 내란 종식과 국민 통합, 민생 회복을 외친 이재명을 21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때처럼 국민은 ‘무수저’ 소년공 출신 정치인을 중심부로 끌어내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재명 정부는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 정부가 될 것”이라며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정부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 이어 네번째 민주당 계열 정부다. 앞선 세 대통령보다 유리한 정치 지형에서 출발한다. 내란 종식을 갈망하는 국민 지지에 힘입어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170석의 더불어민주당에 조국혁신당 등 우군까지 합하면 189석을 갖고 있다. 각종 입법이 번번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가로막혔지만 이제 치밀한 실천 계획만 뒷받침한다면 자신의 약속과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다. ‘87년 체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정부라는 평가도 과하지 않다.



그런 만큼 이재명 정부는 과거 ‘민주당 정부’와 달라야 한다. 내란 심판과 국민 통합, 민생 회복을 실천하고, 성과로 효용을 증명해야 한다. 성과 없는 공약과 취임사는 되레 제 발목 잡는 족쇄, 갚아야 할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걸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려 한 인천공항공사 직원 정규직화는 공정성을 해친다는 반발을 불렀고, 역점을 둔 부동산 정책은 되레 ‘무능의 증거’처럼 공격받았다.



이재명 정부가 성과를 내려면 적재적소에 능력 있는 인물을 발탁해 치밀한 실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사람을 잘못 기용할 수도 있다. 그럴 땐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발탁하고 제때 정리하지 못한 채 사분오열했던 문재인 정부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의석수, 대통령의 힘만큼 중요한 건 국민과 야당, 반대파에 대한 설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때 “나는 국민 속에서 호흡하지 않으면 질식할 수밖에 없다.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다. “국민을 나눠 한쪽에 편승해 권력을 유지하는 졸렬한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지난 3년 야당을 섬멸 대상으로 악마화하다 계엄으로 자폭한 윤석열식 정치에 많은 국민은 환멸을 느꼈다. 이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이 말을 굳건히 지킨다면 우리 정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 주권을 빼앗은 내란은 재발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 했다.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에 숨어 있는 계엄 책임자를 단죄하려는 순간 정치보복 논란이 일 것이다. “괴물 정권 등장을 막아달라”고 외치던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을 부추기며 생존을 위한 정쟁 소재로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막돼먹은 야당을 이기는 건 대통령의 힘이 아닌 국민 여론이다. 야당 탓, 전 정권 탓보다 실질적인 양보와 타협으로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약속한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지금까지 아무도 가지 않은 ‘이재명 대통령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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